사름+, 열 여섯 번째 이야기
9월의 끝에서, 우리들의 이야기: 잘 지내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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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추석 연휴가 지나고, 9월도 끝났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셨나요. 지나고 나면 늘 조금 아쉬운 마음이 남지만, 그래도 우리는 다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다음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오늘 사름 팀은 시청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라고 했지만 사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요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누는 시간에 더 가까웠습니다. 남은 세 달도, 다가올 내년도 잘 지내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을 하나씩 꺼내보았습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수영과 루꼴라, 결항된 비행기처럼 각자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세 가지 이야기로 문을 열고, 사름 매거진을 통해 좋은 인연이 된 강이란 대표님의 라이스나이스와 세화그로서리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지막은 해녀 삼춘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다에 몸으로 들어가 살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로, 9월의 끝을 함께 닫아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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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열 여섯 번째 이야기 순서
- 우리가 일하는 방식: 수영, 루꼴라, 결항된 비행기
-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세화그로서리
- 우리 몬딱 소중해: 해녀박물관 '불턱 토크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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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일하는 방식:수영, 루꼴라, 결항된 비행기
202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고대표, 이팀장, 그리고 곽편. 별다른 급한 일이 없으면 일주일에 하루쯤 만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합니다. 올해는 고대표에게 둘째가 태어나 예전처럼 규칙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능한 한 서로의 일상을 묻고 듣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회사의 방향도 그 안에 있습니다. 사무실에 앉아 일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보고 먹고 마시며 생각의 결을 넓히는 것. 제주 로컬을 다루고 매거진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제주를 몸으로 조금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뉴스레터를 쓰는 날, 우리는 추석을 보내고 돌아온 뒤 각자에게 일어난 세 가지 일을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꼭 대단한 사건이 아니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새로 한 일, 마음에 남은 일, 이상하게 오래 생각나는 일까지. 지금의 우리를 만든 장면들을 한 번쯤 꺼내보고 싶었습니다.
이팀장이 꼽은 것은 수영과 엄마와의 하루, 그리고 관찰이었습니다. 2년 동안 배운 수영 영상을 찍어보며 머릿속 자세와 밖에서 보는 몸의 차이를 확인했고, 어머니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다단계 미용용품을 살 뻔한 일은 “엄마와 남긴 좋은 추억”으로 다시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미뤄두었던 그림을 다시 연습하며 ‘관찰’이라는 단어에 꽂혔다고 했습니다. 길을 걸으며 현수막과 간판 대신 사람의 얼굴, 동작, 하늘과 나무를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대표의 답은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6시까지 일하다가 애기 목욕시키고 밥 먹고 치우고 오니까 이 시간.” 그가 꺼낸 말은 ‘키운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많이 키워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키운다는 것은 관심을 기울이고 내 시간을 나눠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 일 같다고 했습니다.
그가 꼽은 세 가지는 아침식사, 루꼴라, 그리고 둘째였습니다. 첫째가 태어난 뒤 자연스럽게 가족의 아침식사를 맡게 되었고, 첫째가 좋아하는 프렌치토스트와 또띠아 피자를 만들다 루꼴라를 직접 심어 키우기도 했습니다. 물을 주고 살피는 시간은 길었지만, 뜯어 먹는 건 한순간이었다고요. 그리고 올해는 첫째와 아홉 살 차이 나는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어떻게 다시 씻기고 먹일까 싶다가도, 몸이 기억하고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첫째도, 식물도, 둘째도. 결국 키우는 일은 계속 생각해볼 일로 남았습니다.
제 세 가지는 조금 더 부산스럽습니다. 4월에는 임윤찬 리사이틀을 보러 오사카에 가려다 비행기 결항을 겪었고, 결국 대구 본가를 거쳐 새벽 비행기로 겨우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그 뒤로 중요한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갈 때면 비행기부터 걱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올해는 축구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소식을 찾아보고 경기를 챙겨보다가 홀란이라는 선수를 좋아하게 되었고, 새벽 경기까지 볼 만큼 열정적이 되었습니다. 여름부터는 숲에도 가기 시작했습니다. 판초와 고어텍스 운동화까지 샀는데, 네 번 간 숲에서 두 번 비를 맞았고, 정작 장비를 갖춘 뒤로는 아직 숲에 다시 못 갔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가 나눈 건 거창한 결산이 아니었습니다. 수영 자세, 관찰, 아침식사와 루꼴라, 둘째, 결항된 비행기, 축구, 숲 같은 것들. 그런데 결국 이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를 조금씩 바꾸고 있었습니다. 일은 그런 일상 위에서 계속되고,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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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나, 곽편은 셋을 함께 담기가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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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표의 둘째(위)
이팀장이 산 책 <현재를 감각하는 자연 관찰 노트>(아래) |
고대표의 루꼴라(위)
곽편의 인생 첫 축구관람 인증샷(아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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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방앗간에서 시작된 새로운 먹거리 세화그로서리 강이란 대표
라이스나이스는 사름 매거진에도 각별한 이름입니다. 사름 4호에서 강이란 대표를 인터뷰한 뒤로, 브랜드가 조금씩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강이란 대표를 라디오 초대석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날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오래된 방앗간에서 시작해 세화그로서리로 넓어지고 있는 브랜드의 시간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세화그로서리의 시작에는 구좌읍 세화리의 오래된 방앗간이 있습니다. 1982년부터 이어온 외할머니의 방앗간, 지금의 세화제분소입니다. 이곳에서 외할머니와 막내이모, 그리고 강이란 대표까지 3대가 함께 일합니다. 강 대표는 원래 방앗간 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합니다. 제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영양사로 일했지만, 그 일이 잘 맞지는 않았습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시기, 그는 “빵이나 케이크처럼 떡도 일상적인 디저트처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외할머니가 허리 수술을 하게 되면서 이모와 함께 방앗간 일을 시작했고, 그렇게 라이스나이스가 문을 열었습니다. 답례떡과 명절떡에서 출발한 라이스나이스는 이제 체다치즈설기와 고구마찰빵, 쑥버무리 같은 떡 디저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요즘 강 대표가 특히 소개하고 싶은 제품은 기름떡 생지입니다. 기름떡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별 모양 틀로 찍고, 기름에 구워 먹는 제주 전통 떡입니다. 라이스나이스에서는 이 기름떡을 집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냉동 생지로 만들었습니다. 오래된 제주의 떡이 아이들 간식으로도, 커피나 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로도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세화제분소에서는 보리개역도 새롭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리개역은 보리와 콩으로 만든 제주식 미숫가루입니다. 강 대표에게는 어릴 때부터 봐온 익숙한 음식이었지만, 방앗간에서 일하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보리빈’이라는 이름으로, 미슐랭 파인다이닝부터 대형 카페와 로컬 카페까지 여러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강 대표가 지키고 싶은 것은 분명합니다. 좋은 원료를 쓰고, 정직하게 만들고, 한자리에서 오래 꾸준히 해온 태도입니다. 대신 제품을 만들고 파는 방식은 지금의 생활에 맞게 바꿔갑니다. 보리개역을 보리빈으로 만들고, 기름떡을 생지로 선보이는 일도 그런 변화입니다.
그래서 라이스나이스라는 이름이 세화그로서리로 넓어진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할머니의 감각, 이모의 손, 손녀의 기획이 함께 만든 브랜드. 오래된 방앗간에서 시작된 먹거리가 지금의 식탁으로, 또 더 넓은 시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라이스나이스와 세화그로서리의 다음 시간이 더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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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 4호에서 찍은 이란 대표의 가족 사진
강이란, 할머니, 이모 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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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몸으로 들어가 만난 바다
: 해녀박물관 '불턱 토크쇼'
올해는 제주해녀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시간을 생각하며 해녀박물관에서 열린 ‘불턱 토크쇼’에 다녀왔습니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나와 불을 쬐며 몸을 녹이고, 서로의 안부와 바다의 일을 나누던 자리입니다. 이날은 신산리 젊은 해녀 유경이 진행을 맡고, 영락리 젊은 해녀 정윤이 통역을 하고, 북촌리 해녀 삼춘들이 관객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객석에는 외국인 관람객도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해녀 삼춘들에게 얼마나 깊이 들어가는지, 얼마나 오래 숨을 참는지, 위험했던 순간은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박문희 삼춘은 자신을 하군이라 소개하며 5미터 정도 들어간다고 했고, 문영월 해녀회장은 젊을 때는 10미터, 15미터도 들어갔지만 지금은 7~8미터 선에서 작업한다고 했습니다. 숫자로 들으면 짧지만, 그 안에는 숨을 참고 물건을 찾고, 다시 물 위로 올라와야 하는 몸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자주 웃음으로 번졌지만, 마냥 가볍지는 않았습니다. “해녀가 쉬우면 쉬운 거지만, 정말로 좋은 거는 아닙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물건을 많이 잡는 날의 기쁨, 같은 시간 바다에 들어가도 서로 다른 수확을 받아들이는 마음, 사라지는 해초와 줄어드는 소라와 성게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북촌리의 4·3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문영월 삼춘이 시아버지의 행방불명과 시어머니가 겪은 일을 조심스레 꺼냈고, 자리는 잠시 깊어졌습니다.
마지막 질문은 외국인 여자아이가 던졌습니다. 바다에 들어가면 어떤 생물을 볼 수 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삼춘들은 웃으며 소라, 톳, 불가사리, 볼락, 자리돔, 돌고래 같은 이름을 하나씩 꺼냈습니다. 그 이름들이 차례로 나오는 동안, 바다는 더 이상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매일 몸으로 들어가 확인하는 삶의 자리였고, 동시에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이름들을 품은 장소였습니다.
해녀의 일은 아주 오래된 방식으로 바다와 만나는 일입니다. 숨 하나에 기대어 물속으로 들어가고, 손으로 먹을 것을 찾고,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 일. 외국인 관람객과 어린아이들까지 해녀에게 질문을 던지는 풍경은, 어쩌면 그 오래된 채집의 시간이 미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묻는 장면처럼 보였습니다.
불턱 토크쇼는 해녀를 박제된 전통으로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바다에 들고, 줄어드는 해초를 걱정하고, 후배의 망사리에 물건을 보태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해녀박물관의 ‘불턱 토크쇼’는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1회, 문화가 있는 날에 맞춰 열립니다. 일정은 회차별로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해녀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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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의 질문을 듣고 있는 북촌리 해녀 삼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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