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책방과 미유당 차공방이 궁금해 직접 대흘리로 향했습니다. 시내에서 아주 먼 곳은 아닌데도,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이상하게 속도가 달라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러 간다는 일은 커피 한 잔을 사러 가는 일과는 조금 다르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리에 앉자 장보미 대표님은 어떤 차를 마시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평소에 차 생활을 하느냐는 질문에 “도전은 하는데 늘 커피로 돌아오게 된다”고 답했더니,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차를 준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곧 작은 차호와 찻잔, 뜨거운 물이 차례로 놓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차호 위로 물을 끼얹는 모습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리기 전, 차호 안팎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차를 마시는 일에도 이렇게 많은 손의 순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대표님은 오래된 차호를 가리키며, 처음 차 생활을 시작할 때 샀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가 조금 나간 자리까지 오래된 시간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는 동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차 이야기로 시작한 대화는 몸과 마음의 긴장, 상담, 책, 제주에서 살아가는 일로 천천히 번져갔습니다. 대표님은 차를 사이에 두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꺼내게 된다고 했습니다. 몸이 굳어 있으면 생각도 굳어지고, 따뜻한 차가 몸을 풀어주면 그제야 마음 안의 이야기를 바라볼 힘이 생긴다고요.
미유당 차공방에서는 차와 함께 먹을 것도 준비합니다. 예약을 권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손님에게 맞는 다식을 준비하고, 알레르기나 먹지 못하는 재료가 있는지도 미리 살피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이날도 손님을 위해 정성스럽게 다과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남편분과 일을 나누는 방식도 재미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반죽을 잘하고, 누군가는 굽는 일을 잘하고, 누군가는 무를 삶고 간을 맞추는 일을 더 잘한다고요. 한 공간을 운영하는 일은 결국 아주 많은 작은 손의 합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소화책방과 미유당 차공방은 따로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책방을 찾은 손님에게는 웰컴 티를 내어주고, 차를 마시러 온 손님은 어느새 자기 이야기를 꺼내다 책 한 권을 만나기도 합니다. 다만 대표님은 아무에게나 성급하게 책을 권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평소에 책을 읽는지, 지금 어떤 이야기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살핀 뒤에야 책을 추천한다고요.
그래서 저도 물어봤습니다.
“저에게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요?”
처음에는 “너무 잘 살고 계시는 것 같아서 재미있는 만화책을 추천해야겠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다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졌고, 제가 시를 계속 쓰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대표님은 아레스토텔레스의『수사학』을 권했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책이니 읽어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어떤 말에 사람들이 설득되는지 보일 거라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차를 마시러 갔다가 책 한 권을 추천받고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그 시간이 오래 남았습니다. 무엇을 대단히 해결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 앉아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책을 떠올려보는 일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소화책방과 미유당 차공방은 책을 사고 차를 마시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자기 마음을 한 번쯤 살펴보러 가는 곳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천천히 몸을 데우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번 여름, 너무 빨리 뜨거워지기 전에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한 번쯤 필요하지 않을까요. 차 한 잔 앞에 앉아 지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을 천천히 소화해보는 시간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