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열 번째 이야기
: 동백이 떨어지는 시간 |
|
|
3월이 되면 제주는 꽃이 한창입니다. 길가에도, 담장 너머에도 봄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안부를 나눕니다. 그런데 동백은 늘 그보다 먼저 피고, 먼저 집니다. 꽃이 가장 많아지는 3월이 되면, 정작 동백은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나무 위보다 땅 위에서 더 자주 보이는 꽃입니다.
제주에서는 4.3이 특별한 날에만 떠오르는 일이 아닙니다. 마을을 지나다가, 오래된 집터를 보다가, 어른들의 짧은 한마디를 듣다가, 일상 속으로 불쑥 스며듭니다.
그래서 3월의 동백은 늘 다르게 보입니다. 봄이 막 시작되는 때에, 이미 져 있는 꽃. 이 섬에서 먼저 멈춰 선 시간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봄이 왔습니다. 꽃은 다시 피고, 우리는 다시 살아갑니다. 그 사이에서 한 번쯤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제주에서는, 그렇게 4.3이 늘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
|
|
🔢 사름+ 여덟 번째 이야기 순서
-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세계의가정식
- 우리 몬딱 소중해 : 배영란 삼춘 이야기
- 우리동네 소식
|
|
|
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친구의 집에 초대받은 것처럼, 세계의 가정식: 이상은 오너셰프 |
|
|
세계의 가정식은 매주 한 나라의 밥상을 차린다. 금요일마다 메뉴는 바뀌고, 손님은 그 주의 단 한 끼를 먹으러 찾아온다. 익숙한 음식도 있고 처음 만나는 음식도 있지만, 식탁에 앉으면 누구나 편하게 한 끼를 먹고 간다. 이곳의 시간은 낯선 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에서 시작된다.
이상은 오너셰프가 이런 식당을 꿈꾸게 된 계기는 애리조나의 아르코산티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돌아가며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음식을 설명하고, 서로 묻고, 한 접시를 같이 비우던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 가게를 열게 되면 저런 식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세계의 가정식의 시작이 됐다.
제주에 내려온 뒤 그는 지금의 공간을 만나 바로 계약을 했다. 처음부터 반듯하게 준비된 장소는 아니었다. 기름때가 남아 있던 옛 치킨집이었고, 손을 많이 대야 하는 자리였다. 그래도 이곳이라면 자신이 오래 생각해온 방식의 식당을 해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렇게 2017년 문을 연 가게는 어느덧 1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나고 있다.
이곳의 메뉴는 여행에서 맛본 음식들에서 출발한다.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같은 가까운 나라의 음식부터 스페인, 프랑스, 영국, 미국 같은 먼 나라의 가정식까지 식탁에 오른다. 한 나라를 정하면 재료가 겹치지 않도록 다음 메뉴를 미리 고민하고, 같은 메뉴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시 올린다. 손님이 새로운 음식을 만나는 즐거움과, 다시 찾았을 때의 반가움을 함께 느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운영 방식은 꾸준함에 가깝다. 수요일이면 재료가 도착하고, 목요일에는 손질과 준비를 마친다. 금요일 아침에는 마지막으로 맛을 본 뒤에야 문을 연다. 생각한 맛이 아니면 다시 손을 본다.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음식은 내놓지 않는다는 원칙을 오래 지켜왔다.
나라별 요리를 연구하는 일도 시간을 들여 이어가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지인에게 직접 묻는 것이고, 그게 어려우면 여러 번 만들어 보며 자기만의 레시피를 완성한다. 초반에는 메뉴를 맞추느라 밤늦게까지 주방에 남아 있던 날도 많았지만, 그 시간이 쌓여 지금의 가게를 만들었다.
세계의 가정식은 특별한 음식을 내세우기보다, 한 끼의 시간을 소중하게 다루는 곳에 가깝다.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다시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그날의 메뉴가 궁금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의 하루 속에 작은 즐거움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이 식당의 가장 오래된 레시피인지도 모른다.
|
|
|
하귀 마을의 배영란 삼춘 이야기
하귀의 오래된 집들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오래 남는 이야기들이 있다.
배영란 삼춘의 삶도 그런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1943년에 태어난 삼춘은 아주 어린 나이에 집안의 큰 비어 있음부터 배워야 했다. 다섯 살 되던 해, 일본으로 가던 배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그 뒤로 집안의 살림은 어머니와 남은 식구들의 몫이 되었다.
삼춘의 집안에는 먼저 떠난 이름들이 많다. 다친 뒤 오래 아프다 세상을 뜬 오빠가 있었고, 군에 갔다 돌아오지 못한 오빠가 있었고, 일본에서 생을 마친 큰오빠가 있었다. 4.3 때 끌려나간 큰언니의 남편은 끝내 돌아오지 못해, 지금까지도 유골을 찾지 못했다고 삼춘은 말했다.
어린 삼춘에게 그 시절은 소리로 남아 있다. 변소에 갈 때마다 집 옆에서 들려오던 고문 소리, 사람이 매를 맞으며 지르던 비명, 그리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잔뜩 겁을 먹던 어린 몸의 기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뒤의 삶도 쉽지 않았다. 열일곱에 부산으로 가 봉제 일을 배웠고, 스물둘에 시집가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고, 먹고살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 물질을 했다. 그러다 허리를 다쳤고 깊은 물은 피한 채 중바당과 겉바당을 더듬듯 오가며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긴 세월 끝에 삼춘이 붙들고 있던 것은 고생의 장면만이 아니었다. 군대에 간 셋째 오빠가 편지마다 적어 보내던 말,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는 그 당부가 삼춘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학교 문간에 서서 오빠를 기다리던 어린 아이의 마음이, 여든을 넘긴 지금까지도 그 사람 안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배영란 삼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 사람의 삶은 한 줄로 적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상실과 노동과 바다와 가족, 그리고 끝내 다 배우지 못한 공부에 대한 그리움까지. 그 모든 것을 품고도 오늘까지 살아온 사람의 얼굴은, 봄날 하귀의 바람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
|
|
|
한 달 사이, 동네에서 만난 작은 변화와 반가운 소식을 모아 전해드려요.
매거진 사름이 걸어 다니며 발견한 가게와 사람,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들을 짧게 담았습니다.
1
원도심에 있는 편집숍 ‘피키오’에 제주로컬매거진 사름과 굿즈가 입고됐어요.
피키오는 ‘스테이 여언’과 함께 운영되는 공간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제주 곳곳에서 만들어진 브랜드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여행객도, 동네 사람도 천천히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씩 고르게 되는 그런 가게입니다.
사름도 그 자리에 조용히 놓이게 됐어요. 원도심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매거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피키오 위치: 제주 제주시 남성로 143-11 지하1층(10시 30분 오픈)
2
오늘은 인플래닝 식구들과 동네 카페에서 회의를 했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서재 한쪽에 꽂힌 책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전집부터 외젠 이오네스코, 제발트 같은 작가들의 책, 그리고 이성복 시인의 시집과 과학책, 코스모스 최신판까지. 흔히 보기 어려운 책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어요.
우리는 한참 동안 사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다음 인터뷰 약속까지 잡게 됐습니다. 잠깐 회의를 하고 나서 사장님이 직접 내려준 커피를 마셨는데, 모두가 한 번에 감탄을 했어요.
그리고 이어서, 이 쓴맛이 느껴지는 커피를 처음 맛있다고 느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동네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취향으로 운영되는 작은 카페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졌어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모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풀잎들커피아카이브 위치: 제주 제주시 정든로 20-4 1층(11시 오픈, 라스트 오더 4시 40분, 5시 마감) https://naver.me/5mh92CRD
3
매거진 사름의 시작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경면의 요이땅삐삐 사장님들이, 이번에는 저지리에 새로운 가게를 준비하고 있어요. 이름은 ‘파올로 식당’입니다. 삐삐는 여자 사장님의 닉네임이고, 파올로는 남자 사장님의 닉네임이에요.
요이땅삐삐는 주말마다 공연과 퍼포먼스를 이어오며 고산리에서 늘 불을 켜 두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이 있어서 동네가 조금 더 환해졌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런 분들이 준비하는 두 번째 가게라 그런지,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와 맛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파울로 식당 위치: 한경면 조지리 1853-1 (11시 오픈, 라스트 오더 2시30분, 3시 마감)
editor in chief. 곽효정
by inplanning
위 사진: 풀잎들커피아카이브에서
아래 사진: 피키오에 진열된 매거진 사름과 굿즈 (그리고 파올로 식당 사진과 오픈 이야기는 다음 레터에서!) |
|
|
매거진 사름(sarm)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우 하고 로컬 인터뷰 소식 보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