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여덟 번째 이야기
: 2026년 어쩔 수 없음이 어쩔 수 있음으로 바뀌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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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작은 문제가 생겨 출장 서비스를 받았어요. 문제 진단보다는 윈도우를 다시 깔아야 한다는 말이 먼저였고, 1테라 분량의 D드라이브는 안전한지 몇 번이나 물은 뒤에야 맡겼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진척은 없었고, 결국 일체형 컴퓨터는 더 손을 댈 수 없다며 AS센터에 가서 D드라이브를 빼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날부터 일이 이상해졌습니다. 다음 날 돌아온 답은 단순했어요. 아무 파일도 없고, 윈도우를 설치한 흔적만 남아 있다는 말이었죠. 복구업체에서도 살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요. 5년 동안 제주에 살며 기록해온 필름 사진과 디지털 사진, 틈틈이 남겨둔 부모님의 목소리와 글이 모두 그 안에 있었습니다. 여행의 기록이기도 했고, 일의 자료이기도 했고,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는 남길 수 없는 시간들이었어요.
왜 더 대비하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나무랐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더라고요. 이번에는 그냥 어쩔 수가 없었다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로 생각이 조금 바뀌었어요. 앞으로 무엇을 디지털로 남길지, 무엇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방식으로 간직할지. 자주 보고 싶은 사진은 인화를 하고, 중요한 글은 프린트해서 보관하려고요. 모든 것이 더 빠르게 바뀔수록,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의 자리는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번 호 뉴스레터에는 매거진 사름의 초창기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 지금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만옥 삼춘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전 세계의 바다를 누비며 살았던 삼춘이 가장 또렷해지던 순간은, 첫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그때 삼춘의 표정은 마치 조금 전의 일처럼 살아났고,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흘러온 시간들 속에서도, 사람은 끝내 붙잡고 살아가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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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여덟 번째 이야기 순서
-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클래식 문구사 김미혜 대표
-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목화오름 정보람 농부
- 우리 몬딱 소중해 : 고만옥 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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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취향이 쌓여 가게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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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문구사는 2021년, 문을 열던 순간부터 빠르게 변하는 취향이나 유행보다는 오래 쓰이는 물건에 기대를 걸어온 가게였다. 연필과 노트, 지우개처럼 한때는 익숙했지만 어느새 멀어졌던 도구들을 다시 손에 쥐게 만드는 공간이었고, 디지털 화면으로 가득 찬 일상 한쪽에 종이와 손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남겨두는 자리였다. 몇 해가 흐른 지금도 가게는 같은 골목에 있고, 김미혜 대표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만 물건을 고르는 기준에는 시간이 쌓였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선택이 출발했다면, 이제는 손님들의 말과 취향을 한편에 모아두었다가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관심이 생긴 물건을 천천히 들인다. 혼자의 취향으로 시작한 가게가 여러 사람의 사용과 경험을 거치며 조금 더 넓어졌다.
문구를 대하는 마음 역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클래식문구사를 시작할 무렵에는 어른이 된 이후 다시 알게 된 연필에 깊이 빠져 있었지만, 요즘 김미혜 대표의 손은 만년필로 자주 향한다. 노트 위에 스며들며 드러나는 잉크의 색과 문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즐거워졌고, 그 변화는 가게의 진열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다양한 잉크를 직접 써보고, 만년필과 잘 맞는 노트들을 조금씩 소개한다. 그렇다고 방향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기준은 분명하다. 오래 쓸 수 있는지, 손에 부담이 없는지, 누군가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지.
가게를 오래 하다 보니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생겼다. 여행 중 들렀을 유명 아티스트 커플이 각자 노트와 펜을 골라 갔던 날, 그리고 한참 뒤 우연히 방송 화면 속에서 그들이 같은 노트와 펜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마음은 지금도 선명하다. 물론 더 자주 마음에 남는 순간은 예전에 산 문구를 잘 쓰고 있다며 다시 들러 노트를 보여주거나 이야기를 건네는 손님들이다. 물건이 팔리는 순간보다, 시간이 지난 뒤 이어지는 관계가 이 가게를 계속 열게 만든다.
김미혜 대표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일이 책을 읽는 것만큼 마음을 다독인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문구 사용이 낯설다면 조용한 방에서 혼자 필사나 일기를 써보기를 권한다. 클래식문구사는 그렇게 혼자만의 속도로 시작해도 괜찮은 공간이기를 바란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거창하지 않다. 큰 변화 없이, 이 골목에 오래 남아 있는 것. 동네에 남아주는 가게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의 하루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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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시간을 재배하다 _목화오름 정보람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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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름이 처음 만들어지던 2020년, 첫 호의 인터뷰이로 만난 정보람 농부는 제주에서 목화를 키우며 그것으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그의 선택은 아직 결과가 아니라 질문에 가까웠다. 원소재를 직접 길러 옷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쌓여온 갈증에 가까웠고, 그 갈증은 제주에 머무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패션과 의류 산업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그는 왜 한국의 패션이 늘 출발선에서 한계를 맞는지를 고민했고, 그 이유가 원소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군가는 그 시작을 맡아야 한다면, 직접 해보겠다는 선택이었다.
목화를 키우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느리고 복잡했다. 국내에서는 GMO 종자 혼용 문제로 목화 재배 자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였고, 그는 씨앗 하나하나를 직접 발아시키고 검사해 음성 종자만을 남기는 방식으로 농사를 시작했다. 공식 기준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안전 장치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종자를 폐기해야 했고, 수확량 역시 미미했지만 그는 그 시간을 실패로 여기지 않았다. 농사의 시작은 씨앗을 심는 순간이 아니라, 밭과 씨앗을 관리하는 태도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확한 소량의 목화는 실이 되고, 원단이 되었으며, 비록 공장에서 옷을 만들 만큼의 양은 아니었지만 시작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자신이 재배한 원소재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어떻게 옷으로 이어갈 것인가였다. 몇 해에 걸친 실험과 반복 끝에, 씨앗은 제주에서 관리되고 원단은 전주에서 제작된 뒤 다시 제주로 돌아와 디자인과 제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조금씩 현실이 되었다.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안덕면 광평리에서 유기농 목화를 기르며 씨앗에서 실, 원단과 옷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가고 있다. 목화오름은 더 이상 개인의 실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육묘의 계절에는 씨앗을 나누고, 만개의 시기에는 사람들과 노고를 나누며, 수확의 끝에는 아이들과 밭에 들어선다. 농사와 제작, 축제와 교류가 한 장소 안에서 겹쳐지는 이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이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 자리다.
그는 이 일이 당장 큰 성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시작 자체가 중요했고, 이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 매거진은 1호에 남겨두었던 그 질문을 다시 불러, 제주에서 어떤 일이 어떤 속도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기록한다. 목화오름은 지금도 여전히, 시간을 재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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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몬딱 소중해 마라도스의 길, 파나마 운하를 지나 신촌리로
_고만옥 삼춘
고만옥 삼춘은 오랫동안 배를 탔던 사람이다. 무역선 마라도스로 11년을 바다에서 살았고, 지금은 신촌리에서 밭을 돌보며 하루를 보낸다. 삼춘의 삶을 한 단어로 부르자면 항해에 가깝다. 바다 위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고, 그 시간은 생계를 넘어서 한 사람의 선택과 기다림을 품고 있다.
삼춘은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해방을 맞아 제주로 돌아왔다. 그 무렵 공습 속에서 형님과 헤어졌고, 형님이 어딘가 살아 있다는 말만 남았다.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형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일자리는 마땅치 않았고, 일본으로 갈 방법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삼춘에게 배를 타는 일은 생계를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형님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북촌 사람이라는 이유로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무역선을 타기 전에는 국내선을 오래 타야 했고, 그 시간을 채워야 외국 수첩을 받을 수 있었다. 삼춘은 그렇게 20개월을 국내선에서 보내고도 한동안 더 기다려야 했다. 그 시절 무역선을 타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했고, 막내 선원의 월급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삼춘이 배를 타고 싶었던 이유는 돈보다 분명했다. 형님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기다림 끝에 길은 뜻밖의 만남으로 열린다. 부산 남산의 계단을 오르던 날, 앞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에서 군대 동기를 알아보았고, 그 인연으로 삼춘은 외국행 배에 오르게 된다. 그날 저녁, 빅토리 마치라는 배에 몸을 싣고 첫 항해를 시작했다. 필리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처음 6개월은 막내로서 온갖 일을 도맡아야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배의 생활에도 리듬이 생겼다. 무역선의 하루는 분명했고, 정해진 시간만 일하면 됐다. 직급이 오르면서 월급도 나아졌고, 삼춘은 11년 동안 월급을 가불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매달 우편으로 도착하던 명세서는 그 시간을 증명하는 기록이었다.
삼춘의 항해는 세계로 이어졌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며 배가 수문을 따라 올라가던 장면은 지금도 또렷하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미국까지. 학교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바다에서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은 몸에 남았다. 삼춘에게 그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긴 항해를 마친 뒤 삼춘은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아이들 곁에서 보내지 못한 시간이 마음에 남았지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족을 책임졌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자, 삼춘은 배 이야기가 아니라 큰딸을 처음 품에 안았던 날을 떠올린다. 그 순간이 제일이었다고,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었다고 말한다.
마라도스로 살았던 시간은 그렇게 신촌리로 돌아와 남았다. 바다 위에서 벌고 건넌 세월은 지나갔지만, 삼춘의 삶에는 여전히 그 시간이 고스란히 깔려 있다.
editor in chief. 곽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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