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일곱 번째 이야기
: 2025년 한 해 수고 많았습니다 |
|
|
우즈베키스탄의 소도시 페르가나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제자 무함마드는 축구도 공부도 모두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시간을 아껴 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친구였고, 그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제 삶을 돌아보게 되곤 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시절,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후 한국의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지내다 무역 회사에 취업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그다운 선택들이었습니다.
그때의 그는 한국어가 유창한 편은 아니었지만 영어와 러시아어는 능숙했습니다. 헤어지던 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한국에서 만나는 날에는 선생님과 한국어로 이야기하겠다고요.
몇 해 뒤 제주에서 다시 만난 그는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약속대로 그는 한국어를 꾸준히 공부했고, 한국어능력시험 최고 등급을 받은 뒤 저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페르가나에서 헤어지기 전 함께 적어 두었던 5년 뒤의 꿈 세 가지를 떠올리며, 한국에서의 생활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기축구동호회 활동을 하는데, 축구를 마치고 나면 모두가 헤어질 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한다는 겁니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설 때도, 즐겁게 시간을 보낸 뒤에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그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한국 사람들은 왜 즐겁게 놀고 나서도 수고했다고 말해요?”
그 질문은 이후로 제가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마다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수고로 통과해 온 사람들일까요.
2025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 저녁입니다. 즐겁게 살기 위해 애쓰느라, 버거운 시간 앞에서 버텨내느라, 더 나아가기 위해 일하느라 여기까지 온 여러분. 올 한 해,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
|
|
🔢 사름+ 일곱 번째 이야기 순서 : 올해를 기억하기 위한 사진
1.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 고한결
2. 디자이너의 시선 :: 이승미
3. 진짜 제주살이 :: 곽효정
|
|
|
1.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 고한결이 선정한 올해 4컷 |
|
|
1. 1년 동안 사용했던 입주 공간, 소통협력센터 이 공간 덕분에 자주 회의를 하고, 1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과 일 사이의 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쌓이던 장소였습니다.
2. 인쇄소의 작업 손. 납품을 기다리며. 일하는 사람의 손을 유심히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쇄소에서 일하는 분들의 손은 특히 그렇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그 손을 보고 있노라면, 더 정직하게, 더 열심히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3. 여름날 상추를 씻다 발견한 코딱지만 한 새끼 달팽이. 지금도 살아 있음. 농담처럼 잡아먹으려고 키우는 거냐고 물었지만,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그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은 제법 자라 달팽이 똥을 치우고 밥을 주며, 언젠가 풀어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려낸 달팽이도 언젠가 어딘가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며 살아가겠죠. 우리처럼.
4. 사름 12호 교정을 위해 받은 인쇄본 올해 8월 북페어에 참여하기 위해 만들었던 사름 매거진 12호의 교정본입니다. 공을 들인 뒤 결과물을 손에 쥐는 순간의 마음은 늘 특별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내년 사름 13호도 이어집니다. |
|
|
-
거리감을 유지하자고 생각하니 조급해지지 않아 좋다. 이승미 팀장님의 첫 번째 사진은, 제 고양이 단에게 육지에 간 저를 대신해 밥을 주러 왔을 때의 장면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단의 태도가 유난히 인상 깊었나 봅니다.
-
하늘과 아이들이 함께 담긴 오후의 한때 평소 인물 사진을 거의 찍지 않는 팀장님이 남긴 기억은, 이렇게 일상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
잘못 나온 인쇄물 잘못을 이야기하고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넘어갈지 망설이던 갈림길에서의 선택. 그리고 역시, 팀장님은 올해의 사진으로 일을 담았습니다. 한결 대표님과 팀장님, 두 분 모두 일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
|
올 한 해 가장 뜻깊은 일을 고르라면, 마을을 다니며 삼춘들을 인터뷰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해녀 탈의장에서, 어떤 날은 3대째 살아온 삼춘의 집에서, 또 어떤 날은 4.3으로 불타 사라진 자리 위에 새로 지었다는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해녀 삼춘에게는 더 가까이 다가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건넸고,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그저 삼춘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어질 때는 말없이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다 다짜고짜 짐을 꾸리며 시내까지 함께 가겠다는 삼춘을 뒷좌석에 모시고, 관덕정까지 운전하며 올 한 해의 끝자락을 함께 지나오기도 했습니다.
올해 저는 모두 열한 개의 마을을 다녔고, 마흔네 분의 삼춘을 만났습니다. 올해의 결산을 이것으로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것만큼 분명한 결산이 또 있을까요.
삶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일을, 심지어 놀 때조차도, 수고롭게 해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서로에게 한 해 수고 많았다고 다정한 인사를 건네겠죠.
여러분이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과 그 시간이 틀리지 않았음을, 언젠가 그 시절의 우리가 참 잘해냈다고 말할 날이 올 것임을 믿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 안 좋은 일이 많더라도, 그 과정 역시 언젠가 삼춘처럼 나이 들고 농익어 가는 시간이라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사진으로는 오늘 외도2리에서 만난 두 분의 삼춘 사진과 영락리 해녀 탈의장 사진을 골랐습니다. 그분들을 만나 인터뷰하지 않았다면, 제가 진짜 제주살이가 무엇인지 어찌 알 수 있었을까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삼춘이 되어갈 우리에게, 그리고 지금의 삼춘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ditor in chief. 곽효정 |
|
|
매거진 사름(sarm)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우 하고 로컬 인터뷰 소식 보기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