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다섯 번째 이야기
: 제주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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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다른 지역을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결국 제주라는 것을.
때론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이번 레터에서는 내가 특별히 아끼는 제주의 공간과 삼춘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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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언덕
사름 매거진에 함께하는 박진희 작가는 오래된 친구다. 2021년 내 생일에 그는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다며 나를 불렀다. 길치인 그는 몇 번이나 길을 헤맸다. 이 길인가 싶으면 아니었고, 저 길인가 싶으면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즐거웠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멋진 장소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제주는 그런 곳이다. 길을 잃는 과정에서도 저 멀리 바다와 한라산이 늘 동행해 주는 곳.
애월의 어느 오르막길, 곱들락한 골목을 지나 사유지를 통과해 언덕 꼭대기에 오르면 제주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곳은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선 끝에 만난 장소였다. 하지만 사유지였기에, 그리고 제주가 무분별한 방문으로 자연 훼손의 상처를 입고 있기에, 그 생일 이후로 나는 그 길을 다시 찾지 않았다(물론 역시나 길치인지라 찾을 수도 없고).
다만 누군가에게 이렇게는 말하고 싶다. 제주에는 길을 잃었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언덕이 있다고. 평생 단 한 번만 닿을 수 있는 자리이니, 기왕이면 당신도 특별한 날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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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다섯 번째 이야기 순서
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아이러브눅, 머무는 자리
2. 우리 몬딱 소중해(1) :: 둔지오름과 할아버지
3. 우리 몬딱 소중해(2) :: 호근마을의 구덕 장인, 오영희 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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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아이러브눅, 머무는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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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길수 씨와 현지 씨 부부는 좋아하는 것을 하나씩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첫 번째 실험은 친구들과 함께 시작한 로미뮤직하우스였다. 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의 취향을 나누는 자리. 그곳 운영이 자리를 잡자 두 사람은 두 번째로 만들고 싶던 공간을 꺼냈다. 책을 중심에 둔 쉼의 장소, 아이러브눅이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 두 사람은 같은 고민을 오래 나눴다.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카페에서는 대화 소리에 휩쓸리고, 집에 있으면 해야 할 일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공공장소는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다. 결국 ‘가만히 머무는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일상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브눅을 만들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한 장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책을 펼치고, 글을 쓰고, 마음을 정리하는 자리다. 하지만 혼자만의 고립이 아니라,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머무르며 만들어내는 조용한 연대가 있다.
길수 씨와 현지 씨가 진짜 원한 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었다. 겉으로 보면 각자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곳 같지만, 실은 혼자가 아닌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로 머무는 장소’다.
그들은 모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곳은 모두를 위한 곳은 아니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는 모두를 품은 공간이 된다.
테이블에는 작은 안내판이 있다. 목소리를 낮추고, 휴대전화를 멀리 두고, 서로의 시간을 존중해 달라는 것. 그렇게 확보된 고요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를 회복한다. 누군가에겐 멈춤이, 누군가에겐 다시 시작이 되는 시간이다.
로미뮤직하우스가 음악을 매개로 취향을 나누는 공간이라면, 아이러브눅은 고요 속에서 나를 회복하는 공간이다. 두 사람은 오늘도 한 장의 책, 한 줄의 문장으로 이곳을 채운다. 제주에서 자신들의 삶을 실험하듯,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참고로 아이러브눅은 온라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원하는 테이블과 인원을 체크하고, 그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작은 정원과 공간 곳곳의 분위기에 매료될 것이다. 길수 씨와 현지 씨의 손길이 깃든 정성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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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리 몬딱 소중해 (1)
: 둔지오름과 할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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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좋아하는 장소라는 주제를 듣고 별안간 둔지오름이 떠올랐다. 제주 사는 동안 너덧 번 갔을까? 어째서 그곳이 생각났을까?
둔지는 평지보다 조금 높은 곳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누군가의 소개로 간 참이었는데 인적이 뜸한지 탐방로가 따로 없었다.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올랐다. 경사가 가팔라 몸이 자꾸 기울었다. 정상에 다다르니 뜻밖에 조그만 평상이 하나 있었다. 누가 여기까지 평상을 옮겼을까, 갸웃하는데 저쪽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인기척을 냈다. 산불관리를 위해 매일 이곳을 오르내린다며 집사람이 싸주었다는 간식을 내게 조금 건넸다. 아까 그 발자국, 이 평상, 할아버지의 것이었구나. 할아버지는 어쩌다 찾아온 손님에게 마치 제 자식 이야기하듯 오름 이모저모를 들려주었다. 흡사 사랑의 언어 같았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풍경이라도 사람이 더해져야 오래 남는다. 제주는 자연, 건축, 음식 구석구석에 사람이 깃들어 있다. 바다에는 해녀가, 정낭에는 공동체가, 낭푼밥상에는 워킹맘의 서사가 농축된 식이다. 호기심에 머리를 들이밀었다가 속절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마는 경험을 얼마나 했던가. 그러므로 내가 제주에서 좋아하는 장소란 결국 사람이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려나.
P.S. 내게 둔지오름을 가르쳐준 사람은 사진작가 김영갑이다. 그가 ‘내 영혼을 사로잡아 섬에 홀리게 만든 마력이 숨어있다’고 고백한 오름. 루게릭병으로 카메라를 잡지 못하는 동안에도 가장 선명하게 떠올랐다는 오름이 바로 둔지오름이다. 혹여 둔지오름에 가신다면 운동화 끈 잘 동여매고 가시길. 산불관리 할아버지께 안부도 전해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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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부산에 살면서 제주에 마음을 둔 사람.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뭍에 나와 있지만 다시 섬에 돌아갈 거라 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왜 제주가 좋으냐 물으면, 주파수가 맞다고 답할 밖에. 지지직거리던 삶의 잡음이 비로소 제주에서 조금, 잦아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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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 몬딱 소중해 (2)
: 호근마을의 구덕 장인, 오영희 삼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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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삼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지나온 힘겨운 인생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다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에 닿는다. 그래서 주어진 생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오늘은 호근마을의 구덕 장인, 영희 삼춘을 만나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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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근마을은 한라산 자락에 기대어 바다로 기울어진 중산간 마을이다. 예전에는 돌무더기가 많아 ‘허근머들’이라 불릴 만큼 척박했지만, 사람들은 그 땅을 일구어 조금씩 마을을 만들어왔다. 지금은 치유의 숲과 놀이터, 마을밥상 같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마을의 뿌리를 지켜온 건 여전히 그곳 사람들의 손길이다.
그중 한 사람, 1941년생 오영희 삼춘은 구덕을 짜는 장인이다. 구덕은 나물이나 생선을 담아 나르던 제주의 전통 바구니. 대나무를 12월에 베어 삶고 말린 뒤, 결을 따라 손으로 하나하나 엮어 만든다. 단순한 바구니가 아니라, 삶과 손때가 고스란히 담긴 생활의 그릇이다.
삼춘이 구덕을 처음 짠 건 열네 살 때였다. 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그 시절에는 중학교도 돈을 내야 했다. 입학금, 월사금, 운영비까지 석 달마다 돈을 가져오라 했지만 집에는 형편이 되지 않아 결국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대신 형님들이 짜던 구덕을 옆에서 눈으로 익혔다. 밭일 나간 틈에 몰래 구덕을 살펴보며, 가로와 세로로 몇 줄을 세워야 모양이 잡히는지 숫자를 하나하나 세어보고 손으로 흉내를 내며 엉성하게 짜보았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말했다. “셋째도 할 만하다. 한번 해봐라.” 그렇게 시작한 일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보릿고개 시절, 구덕은 곧 생계였다. 삼춘은 한림까지 걸어가 구덕을 만들고 보리 같은 곡물과 바꿔 먹고살았다. 스물한 살 장가가기 전까지 번 돈을 모두 어머니께 드렸는데, 그 돈으로 어머니가 지금 작업실이 있는 땅을 사주었다. “내 손으로 번 돈으로 산 땅”이라며 삼춘은 자랑한다. 학교는 못 갔지만 손으로 배운 기술이 삶을 지탱해주었고, 정직하게 일한 대가가 남아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
세월이 흐르며 구덕은 설 자리를 잃었다. 플라스틱이 나오고, 생활도 달라졌다. 밥벌이가 되지 않자 삼춘은 석공도 하고, 감귤 농장 일도 하고, 경운기도 몰았다.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도 손끝에서 이어온 구덕은 버리지 않았다. 서귀포에서 김희창 어르신과 단 둘이 남아 전통을 이어오다가, 지금은 홀로 지켜내고 있다. 다행히 2018년 무렵부터 옛것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구덕의 가치는 다시 조명받고 있다. 현재는 제자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며 전승의 길을 열고 있다. 제주도민은 물론, 외국인까지 이 작은 작업실을 찾는다.
삼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물었다. “요즘이 행복하지. 나이 들면 다들 한가하다고 하지만, 나는 일이 많아서 좋아. 내 손으로 할 일이 있고, 가르칠 제자도 있으니까. 내가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아 뿌듯해.”
삶의 가장 바쁜 시간은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삼춘의 손끝은 여전히 분주하다. 오늘도 대나무를 다듬고 구덕을 짜며, 누군가의 단 하나뿐인 구덕을 만들어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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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면적, 서울의 세 배
제주의 면적이 서울의 세 배가 넘는다는 걸 알게 된 건, 제주로 이주한 그 해였다. 운전을 하지 못해 대중교통으로만 이동하던 시절. “차 없이는 불편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오히려 그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
한경면 고산리에서 구좌읍 숲길까지 가던 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단 한 명뿐인 승객을 위해 경로를 벗어나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던 기사님의 모습만은 선명하다. “제주는 서울의 세 배라 두 발만으론 어렵다”던 기사님의 말은 오래 남았다. 그 뒤로 나도 누군가에게 제주가 얼마나 큰지 설명할 때면 꼭 덧붙인다. “서울의 세 배 면적이라고요.”
차를 몰기 시작한 뒤론 버스를 자주 타지 않지만, 그날의 친절은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노선이 아님에도 낯선 숲길에 혼자 남을 나를 걱정해준 버스 덕분에 오래 기억에 남는 구좌읍 숲길처럼, 민정 작가가 말한 것처럼 제주는 곳곳에 사람이 깃드는 장소가 있다.
지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마무리하는 ‘제주에서 좋아하는 장소’. 이제는 당신 차례다. 당신이 좋아하는 제주의 장소는 어디인가?
editor in chief. 곽효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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