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네 번째 이야기
: 당신이 오늘 붙들고 있는 작은 꿈의 조각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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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반복되는 일이 있습니다. 아직 여름의 끝을 붙들며 아이스아메리카노, 빙수, 물냉면, 물회를 찾다가도, 어느 날 문득 어스스한 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느끼죠. 그리고는 어김없이 에취― 감기에 걸립니다. 올해도 다르지 않네요. 감기 기운을 안고 정기 4회차의 시작 글을 씁니다.
9월의 마지막 날, 라디오에 특별한 게스트가 찾아옵니다. <수연의 선율> 장편 영화로 데뷔한 최종룡 감독입니다. 대학 졸업 후 출판사 시창작 강의에서 만난 후배였지요. 당시 저는 실직 후 시를 써보겠다며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던 시절이었고, 후배는 막 영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을 때였습니다. 둘 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소식이 끊겼고, 가끔 다른 후배에게 “종룡은 여전히 영화 찍고 있어?” 하고 물었죠. 어쩌면 후배가 그 힘든 일을 그만두길 바라면서도, “네, 아직 찍고 있대요”라는 답을 들으면 이상하게 안도했습니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비현실적이더라도 꿈을 위해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8~9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후배가 장편 영화를 연출했다는 소식을 온라인에서 보았고, 저는 누구보다 기뻐하며 축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것을 ‘성공’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후배도, 저도 잘 압니다. 장편 데뷔작 하나로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걸요. 하지만 최소한 그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지지의 표시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요즘 그는 다음 영화의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왜 이토록 무모하지만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걸까요.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작은 꿈의 단면을 포착하는 순간들이 제 마음에 오래 남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전할 네 편의 이야기에도, 보통이고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한 조각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삶에도 숨어 있는 특별한 꿈의 조각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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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네 번째 이야기 순서
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냠냠제주, 제주의 맛을 잼에 담다
2.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별앗간 농부들, 질문을 심는 아홉 의 농부
3. 바람 따라 예술 :: 그림처럼 찍고, 현실을 묻다 — 사진작가 박근주
4. 우리 몬딱 소중해 :: 세화1리 현용천 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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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냠냠제주, 제주의 맛을 잼에 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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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일한 자여 떠나라.”
서울에서 1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던 은영 씨는는 어느 날 광고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교래리 숲 사이를 달리는 자동차와 그 밑에 적힌 문장. 자유가 뭘까, 제주란 어떤 곳일까. 고민 끝에 섬으로 내려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거의 무작정이었다.
제주와 친해지는 방식은 요리와 기록이었다. 마트에서 제철 농산물을 사 와 요리를 하고, 블로그에 매일 올렸다. 겨울엔 귤과 당근, 봄엔 감자, 여름엔 호박, 가을엔 메밀. 차곡차곡 쌓이는 정성어린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댓글을 통해 동네 정보가 모였고, 그는 시장에서 생산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렇게 제주의 시간과 사람들이 조금씩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먹다 생각이 번쩍했다. “당근으로도 껍질 결을 살린 살아 있는 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실험은 곧장 부엌에서 이루어졌다. 혼자 먹기엔 아까운 맛이어서 사람들과 나누었고 모두들 제주의 맛에 격찬을 했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 “이거, 팔아볼까?” 그렇게 해서 제주에서 사귄 친구와 벨롱장 플리마켓에 나가 잼을 내놓았다. 결과는 두 시간 만에 완판. 이것이 냠냠제주의 탄생 스토리다.
냠냠제주의 철칙은 분명하다. 제주에서 나는 것만으로 만든다. 친환경 인증 감귤, 구좌 당근, 대정 토마토, 무릉 양파, 동쪽의 키위. 원재료는 어디서 났는지 반드시 밝힌다. 그녀는 이 잼을 귀엽게 ‘마말랭이’라 부른다. 감귤은 껍질을 살려 풍미를 내고, 무화과나 키위는 덩어리 식감을 남긴다. 고객 제안으로 시작한 녹차 스프레드 같은 제품도 있다. 블로그에서 출발한 만큼, 아이디어는 여전히 손님과의 대화에서 자란다.
10년 동안 가게를 지켜온 건 이런 원칙과 꾸준함이다. 해외에서 온 단골이 몇 년째 다시 찾아오고, 매번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여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맛과 기억은 같은 곳을 가리킨다. 그 연대가 냠냠제주의 자산이 되었다.
강은영 씨는 빠른 성장보다 오래 버티는 방식을 택했다. 한때 투자 유치를 고민하며 육지에서 설명회에 섰을 때, 투자자들은 ‘성장이 더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그녀가 오히려 확신을 갖게 한 계기였다. 급성장 대신 천천히, 오래 가는 로컬 브랜드의 길을 택한 것이다. “씨앗을 심고 기다려 수확하는 것, 농업의 시간표와 같은 방식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냠냠제주는 오늘도 제주의 농산물로 천천히, 오래, 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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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별앗간 농부들, 질문을 심는 아홉 명의 농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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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별이 너무 많더라고요. 사실은 돌인데, 우리는 그걸 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별앗간 농부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일을 설명한다. 돌을 주워내는 노동을 질문으로 바꾸고, 땅 위에 별을 심듯 생태농업을 실험하는 청년들. 제주시 대흘리의 1000평 밭에서 그들은 함께 농사를 짓는다.
주희 농부는 한때 초등학교 교사였다. 연달아 동료를 떠나보낸 후 삶에 대한 의문이 찾아왔고, 우연히 분양받은 도시 텃밭이 위로가 되었다. “흙 만지는 시간이 나를 살렸어요. 그래서 이걸 다른 사람들과도 나누고 싶었죠.” 그는 이제 요가와 명상을 결합한 텃밭 프로그램을 열며, 농사가 회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준다.
인희 농부는 부모님의 양봉 일을 거들며 자연스레 농업에 발을 들였다. 꿀벌과 함께 살아온 시간이 이제는 자기 삶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 제주 양봉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제주에만 있는 감귤꽃꿀을 알리는 게 목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아카시아 못지않게 향이 좋아요. 제주 하면 감귤꽃꿀을 떠올리게 하고 싶어요.”
찬희 농부는 제주 토종 콩, 푸른 독새기콩에 매료되었다. 후무스를 만들며 콩을 직접 심기도 했지만, 수확의 대부분은 노루의 몫이었다. “다 가져가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노루를 보니까 너무 멋있었어요. 증오가 다 사라지더라고요.” 그는 지금도 노루와 공존할 방법을 찾고 있다.
별앗간 농부들의 이름은 ‘별’과 ‘방앗간’에서 왔다. 돌을 별이라 부르며, 별처럼 많은 질문을 던지자는 뜻. 또 예전 방앗간처럼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동체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담겼다. “우리 밭에는 별처럼 질문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생태계에 무해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들의 실험은 단순한 농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공모 텃밭을 운영하며, 함께 키우고 싶은 작물을 제안하고 팀을 짠다. 주희는 요가 텃밭을, 찬희는 후무스 밭을, 또 다른 농부는 생강밭을 열었다. 김치클럽을 꾸려 비건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밭은 일터이자 놀이터이고, 무엇보다 질문을 나누는 공동체다.
앞으로의 계획도 분명하다. 찬희는 두모리에 매장을 열어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거점을 만들려 하고, 주희는 치유 농장을 꿈꾸며, 인희는 감귤꽃꿀을 널리 알리고 싶다. “우리만이 아니라, 또 다른 생태농업을 하는 농부들의 이야기도 모아 전하고 싶어요.” 별앗간 농부들의 시선은 언제나 자신들 너머를 향한다.
별앗간 농부들의 방식은 단순한 농사법이 아니다. 돌을 별이라 부르고, 밭을 질문의 장으로 바꾸며, 생태농업을 함께 실험한다. 제주의 밭 어딘가에서 오늘도 그들은 별을 줍고, 질문을 심으며, 일의 의미를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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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람 따라 예술
: 그림처럼 찍고, 현실을 묻다 — 사진작가 박근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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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성산일출봉을 직접 봤을 때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보고 있는 게 실제인지, 아니면 착각인지. 영화 트루먼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박근주 작가는 그렇게 제주에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서울 강남에서 자라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았던 그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 과연 이런 환경이 옳을까 고민했다. 아내가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는 흔쾌히 짐을 쌌다. 그렇게 종달리에 자리 잡으며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그의 사진은 흔히 보는 풍경 사진이 아니다. 건물의 벽, 하늘, 빛이 부딪히는 순간들을 잡아낸다. “일상에서 늘 스쳐가는 건물들, 익숙해서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들을 예술품처럼 담아내고 싶었어요.” 유심히 바라보고, 화창한 날의 빛을 기다리고, 묵상하듯 바라본 장면들은 어느새 그림처럼 변한다. 그래서 평론가들은 “그림 그리듯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그림을 잘 그렸고, 자신은 세밀하게 그린 그림으로 혼난 기억도 있다. 그 그림을 아버지가 덧칠해 새로운 작품으로 완성했을 때, 그는 그림 대신 사진으로 길을 틔웠다. 결국 ‘그림 같은 사진’은 그의 평생 화두가 된 셈이다.
박근주 작가의 세계는 한국보다 먼저 해외에서 알아봤다. 영국 런던의 사치 아트(Saatchi Art)는 그를 ‘이주의 작가’에 이어 ‘올해 주목할 작가’로 선정했다. 낯선 이들이 온라인에서 그의 사진을 구입하며 시작된 일이다. “한국에서는 반응이 미약했지만, 결국 작품은 어디서든 발견되더라고요.”
최근 그는 독일 전시를 마쳤고, 현재 유럽 최대 규모의 예술 페스티벌 ‘NordArt’에 참여 중이다. 서울대미술관과 성남큐브미술관, 그리고 영국 기업에도 작품이 소장되면서 활동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은 ‘낭만적 우울’이라는 새로운 작업을 이어간다. 뒷모습을 촬영해 현실과 이상, 낭만과 우울이 교차하는 순간을 담는다. “앞모습은 가면을 쓰지만, 뒷모습은 다르잖아요. 이주민도, 원주민도, 누구나 낭만과 우울을 함께 안고 있죠.”
작가는 제주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에도 힘쓴다. 마을 어르신들을 패션모델로 촬영한 ‘세대를 잇는 유랑단’, 종달초등학교 아이들과 바다와 오름에서 찍은 ‘자연을 그리는 아이들’. 그에게 사진은 곧 공동체와의 연결이자 기억을 만드는 도구다.
앞으로 그는 한국과 독일, 멕시코를 잇는 교류전에 참여하며, 낭만적이지만 우울한 제주를 세계 무대에서 펼쳐 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주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소로 성산일출봉을 꼽았다. “실제로 보면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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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몬딱 소중해
: 세화1리 현용천 삼춘
“이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세화1리 노인회장 현용천(1945년생) 삼춘의 소개는 짧았다. 담백한 말끝에 마을의 계절과 시간이 응축돼 있었다.
세화1리는 옛 이름으로 ‘도노름’, 가늘게 형성된 숲이라는 뜻을 지녔다. 감귤밭과 밭담 사이로 구불거리는 길이 이어지고, 바람보다 햇살이 먼저 머문다. 마을회관에는 사철 된장 냄새가 배어 있고, 돌담 너머로 웃음이 흐른다. 삼춘의 유년은 바로 그 풍경 속에 있었다.
어릴 적 마을엔 라디오가 단 한 대뿐이었다. 방송 시간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그 집 마당으로 모였다. 어린 용천이는 라디오 앞에서 ‘이 안에 사람이 들어 있나’ 싶어 숨을 죽였고, 아나운서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밤새 귀에 품고 잤다. 집주인은 삶은 옥수수 한 알씩을 아이들 손에 쥐여줬다. 삼춘이 그 시절을 ‘정다운 마을’이라 기억하는 이유다. 저녁이면 둥근 쉼터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열 시가 다 되어야 집으로 흩어졌다. 그 길이 곧 모두의 사랑방이었다.
방학은 곧 농사철이었다. 조와 산두를 심고,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 검질(잡초)을 맸다. 이슬에 젖은 바지 엉덩이에 짜증이 올라오면, 속으로 ‘오늘랑 비나 자락자락 와부러라, 놀게실이’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어린 손보다 어른들의 손길이 더 컸다. “아가, 너 일 잘햄쪄!” 어른들은 늘 칭찬부터 건넸다. 노동은 일상이었고, 함께여서 버거움이 덜했다.
첫 학교날의 기억도 또렷하다. 부모님이 “내년에 여덟 살 되면 학교에 ‘붙일’ 거다” 하셨을 때, 그는 진짜로 붙여버린다 생각해 입학식날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곧 ‘붙인다’가 ‘보낸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고, 초가 지붕 아래 멍석을 깔고 엎드려 ‘기역·니은’을 배웠다. 연필 끝에 침을 묻혀 삐뚤빼뚤 쓴 ‘현·용·천’ 세 글자를 들고 집으로 뛰어가자, 부모님은 온 마음으로 칭찬을 퍼부었다. “정말 잘 썼다. 너 공부 잘할켜.” 그 사랑이 그의 길이 되었다. 교육대에 진학해 초등교사가 되었고, 평생을 아이들 곁에서 보냈다. 지금도 노인회 서류를 직접 쓰기 위해 타자 연습을 한다. 배우는 일 앞에서 그는 여전히 겸손하고 부지런하다. “그 모든 바탕엔 부모님의 지지가 있었주게.”
삼춘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유년으로 돌아갔다. 한낮 들에서 검질을 매고 돌아와, 전깃불 없던 마당에 멍석을 펴고 둘러앉던 밤. 보리밥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갓 삶은 옥수수를 나눠 먹던 시간. 달빛이 마당을 환히 비추고, 집안 식구들의 웃음이 느릿하게 번지던 순간. “그때가,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죠.”
세화1리는 여전히 천천히 익어가는 마을이다. 장이 숙성되듯, 사람의 말과 마음도 오래 두어야 제맛이 난다. 삼춘의 이야기는 그래서 지금도 현재형이다. 둥근 쉼터는 새로 단장한 마을회관이 되었고, 라디오 대신 스마트폰이 손마다 들려 있지만, 서로의 살림을 거드는 마음, 어린 손에 먼저 칭찬을 건네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만은 꼭 고향에서 졸업해라.” 삼춘은 후배들에게 당부한다. 같은 골목에서 함께 큰 친구들은 두 살, 세 살 차이가 나도 평생 ‘야, 야’ 하며 부른다. 어려울 때 기대는 어깨가 되어준다. 삶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도, 돌아올 자리를 지켜주는 힘. 그게 마을이라고, 그는 믿는다.
함께여서, 우리는 더 따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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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용천 삼춘, 오른쪽은 그보다 선배인 정만근 삼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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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제주의 강은영 씨가 제주산 재료만으로 잼을 지켜온 꾸준함은 작은 꿈의 조각입니다.
별앗간 농부들이 밭에 질문을 심으며 무해한 농업을 실험하는 하루도 작은 꿈의 조각입니다.
박근주 작가가 일상 풍경을 그림처럼 붙들어 기록하는 사진 역시 작은 꿈의 조각입니다.
세화1리 현용천 삼춘이 평생 마을을 지키며 건네온 칭찬과 격려 또한 작은 꿈의 조각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질문입니다.
“당신이 오늘 붙들고 있는 작은 꿈의 조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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