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8월 비정기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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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inplanning
‘여름’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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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획회의에는 ‘일’도 있지만, 세상살이와 일상 이야기, 책, 영화,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무언가를 먹거나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질문을 했을까요 (질문의 9할은 곽편*입니다. 가끔은 고실*도 역으로 질문하기도 합니다.)
“여름하면 생각하는 영화 있어요?”
물어본 그 계절이 봄이나 가을이었다면 모호하거나 이 질문이 덜 낭만적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여름과 영화라니…… 바로 내가 본 것에서 여름의 장면이나 느낌을 찾으려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셋은 서로 너무 달라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서로 다른 답변도 나왔고, 그만큼 다양한 작품들이 엄선되었습니다(?)
여름휴가를 못 즐기는 분이라도, 바다에 누워서 낭만을 느끼지 못하더라도 집에 누워 나만의 여름 영화 한편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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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편 : 곽효정 편집장으로 매거진 사름을 총괄한다. *고실 : 고한결 실장으로 인플래닝 대표직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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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프터썬 : 어릴 적 기억 속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당시 아버지가 슬펐는지, 즐거웠는지, 혹은 고독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성장하느라 바빴고, 주변의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기에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스코틀랜드 소녀 소피도 그랬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보낸 터키의 한여름 휴가, 햇살 가득한 웃음 속에는 그녀가 미처 알지 못한 아버지의 고독이 숨어 있었다. 특히 소피가 아버지를 인터뷰하듯 질문하는 장면과 비디오카메라 속 영상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감독은 그들의 여름이 이미 지나간 시간임을 보여주며, 그 시절 소피가 알 수 없었던 빈 자리와 아버지의 슬픔을 성인이 된 현재의 소피가 상상으로 채워야 함을 말한다. 그 여름은 지나갔지만, 기억은 여전히 그녀 곁에 남아 사랑과 상실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 한줄평 :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그 여름의 공백을 채울 수 있다면 몇 번이라도 이 무더위를 다시 살아내고 싶다. |
2. 마르셀의 여름 : 어린 시절의 마르셀에게 여름은 가족과 함께 떠난 긴 휴가이자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짐을 한가득 이고 지고 걸어 별장으로 향하던 길, 지름길이라 믿었던 오솔길이 알고 보니 사유지여서 번번이 막히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조차 웃음이 되었고, 프로방스의 별장은 여전히 새로운 세계처럼 마르셀 앞에 펼쳐졌다. 아버지와 함께 떠난 사냥, 친구들과 벌인 작은 모험, 별장에 내려앉은 여름 햇살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았다. 후속 이야기인 <마르셀의 추억>에서는 다시 찾은 여름 별장에서 첫사랑의 설렘까지 더해지며, 소년은 한층 더 자라났다. 그 여름날들은 지나갔지만, 짐을 이고 걷던 발자국과 설레던 마음은 아직도 생생히 이어져 온다. 이 모든 이야기는 훗날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이 된 마르셀 파뇰이 실제로 겪은 여름 휴가를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에서 비롯되었으며, 영화는 그의 기록을 감독 이브 로베르가 회상록처럼 다시 불러낸 작품이다.
★ 한줄평 : 찬란한 여름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에도 추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이야기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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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름의 조각들 : 여름의 한가운데, 세 남매는 파리 근교 저택에 모인다. 집 안 곳곳을 채운 그림과 가구, 도자기와 골동품은 어머니가 평생 모아온 삶의 기록이자 가족의 추억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이 물건들은 추억이자 동시에 짐이 되어버린다. 남겨진 자식들은 그 집과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지만, 누구도 끝내 지고 가려 하지 않는다. 결국 소중한 예술품들은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저택은 비워진다. 영화의 마지막, 카메라는 남겨진 골동품들을 하나하나 비추며 세월과 이별의 무게를 담담히 전한다.
★ 한줄평 : 추억을 안고 살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떠나보내며 자란다 |
4. 비포 시리즈 : 유럽의 한여름,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빈의 거리를 함께 걸으며 하루 동안 사랑에 빠진다. <비포 선라이즈>는 그렇게 시작된 첫 만남의 기록이다. 9년 뒤 또 다른 여름, 파리에서 다시 마주한 그들은 오후의 짧은 시간을 붙잡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것이 <비포 선셋>이 담은 재회의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9년이 흐른 뒤, 그리스의 여름 햇살 아래 두 아이의 부모가 된 그들은 사랑과 삶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를 끝까지 묻는다. <비포 미드나잇>이 남긴 질문이다. 고등학생 시절 <비포 선라이즈>를, 20대에는 <비포 선셋>을, 30대에는 <비포 미드나잇>을 보았다. 두 사람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 역시 함께 자라며 미래를 그려보았다. 영화가 관객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비포 미드나잇>의 마지막 순간, 지중해 여름에 살고 싶다는 꿈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어쩌면 제주에 오게 된 것도 그때 품은 꿈의 연장선인지도 모른다.
★ 한줄평 : 여름은 9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찬란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과 청춘이었던 우리는 조금씩 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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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플로리다 프로젝트
: 플로리다의 한 여름, 디즈니월드 바로 옆 보라색 모텔에서 여섯 살 무니와 친구들은 하루하루를 모험처럼 살아간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뜨거운 태양만큼 생기 넘치지만, 그 이면에서 젊은 엄마 할리는 생계를 위해 위태로운 선택들을 이어간다. 모텔 매니저 바비는 그 경계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준다. 아이들의 여름은 환한 색깔로 빛나지만, 그 그림자에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가난과 불안이 깔려 있다. 영화의 마지막, 무니가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뛰어가는 장면은, 끝내 붙잡고 싶은 여름의 조각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
★ 한줄평 : 세상 예쁜 배경에 그렇지 못한 스토리. 풍경도, 아이들 자체도 아름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쪽 가슴이 아픈 느낌. |
6.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1983년 이탈리아의 여름, 열일곱 소년 엘리오에게 그 계절은 한 편의 시였다. 집안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의 카프리치오를 연주하던 순간, 손끝의 떨림 속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며 있었다.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 위해 찾아온 대학원생 올리버는 낯선 여름 손님으로 다가왔고, 엘리오는 서서히 그에게 끌렸다. 농장과 마을, 햇살과 과일이 배경이 된 여름의 나날은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깊게 묶어냈다.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올리버의 부탁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고백이었다. 그러나 찬란했던 여름은 오래 머물지 않았고, 계절이 저물자 올리버는 떠나야 했다.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엘리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했고, 상실을 겪는 지금의 고통도 네 삶의 일부이니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느껴라. 그래야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더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그 여름은 지나갔지만, 고통과 떨림까지 품은 기억은 엘리오 안에 남아 그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 한줄평: 여름은 지나가지만, 사랑과 상실의 떨림은 영원히 성장의 한 부분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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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만의 시네마 커뮤니티 🎞️
제주에는 4.3 영화제와 여성영화제, 프랑스 영화제 같은 주요 영화제도 있지만요. 영화가 좋아서 직접 시네마 커뮤니티를 만들어 상영회를 열고 공감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역에서 소모임 커뮤니티로, 공간으로 꾸준히 영화를 소개하는 2곳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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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농 시네마
- 영화를 좋아하는 기획자 마이농이 운영하는 시네마 커뮤니티.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상영회를 열고, 함께 감상하고 각자의 소감을 나누는 무형의 시네마 공간이다. 상영회는 주로 낮에는 카페였다가 밤이면 바가 되는 NOK (綠) : 녹이라는 복합문화공간에서 열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8월 9일 ‘장손’이라는 독립영화를 상영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임을 계획중이라고 한다. (9월 13일 상영회 모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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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리고 제주, 사람 또는 사랑
‘코리아커피위크’에 가보셨나요?
쉽게 말해, 커피를 맛있게 내어주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맛보고 함께하는 행사가 2023년 제주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 행사는 기획자도 참여자도 즐거운 자리처럼 보였습니다. ‘내빈’을 모아 기나긴 오프닝을 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행사였죠. 단순한 행사에 그치지 않고, 지금 제주의 커피 문화를 비춰주는 자리였다고 할까요.
이 행사를 보면서 ‘기획(planning)’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획이라는 건 아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행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곳저곳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은 어떻게 기획할까 궁금해졌습니다. 바리스타이면서 ‘코리아커피위크’라는 행사를 기획했듯이, 나의 본업과 더불어 기획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습니다.
▼ 5월부터 8월까지 9명의 분야별 제주 기획자를 만난 흔적 (인터뷰 스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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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광고입니다 🙌) 온 우주의 기운이 모여(?)
함께 발행하는 제주 로컬매거진 사름 12호가 이번주에 발행됩니다. * 9월부터 온라인 및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기획을 알아보세요!"
※ 아래 최종 표지 이미지는 일부 변경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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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도동 & 원도심의 ‘일’ 인터뷰 기록 (editor. 제주대학교 진로취업과 프로젝트 학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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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일’과 ‘진로’에 대해 탐구해 8월 18일에 발표하는 프로젝트에 멘토 기업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큰 범위에서 ‘인터뷰’라는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하는 시대, 특히 그 녀석(챗GPT)이 등장한 이후로는 앞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줄 말이 더욱 무색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나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으로 ‘질문하고 기록하는 것’을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일자리, 진로, 취업, 창업 같은 한정된 단어로 단정되는 것이 아니라, 삶과 맞닿아 있는 ‘일’에 대해 먼저 고민한 제주의 다른 사람을 찾아가 직접 묻고, 스스로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대상 지역은 제주 청년마을 사업 대상지로 알려진 일도동으로 정했고, 인근 원도심까지 범위를 넓혔습니다. 학생들은 짧은 시간 동안 인터뷰이를 정하고, 질문지를 만들어 묻고 답을 들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레터로까지 전할 계획은 없었는데요. 그들이 기획자이자 에디터가 되어 담아온 지역 상인들의 삶과 일 이야기가 좋아서, 일부를 큐레이션해 편지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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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바당 – 일도동에서 11년째 이어온 토속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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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일도동 골목, 2015년 문을 연 ‘남원바당’은 11년째 한결같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게 이름은 권민숙 사장님의 고향인 서귀포 남원에서 따왔다. 시작은 단순히 장사가 아니었다. “19살 큰아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뒤, 내가 살기 위해 제일 힘든 일을 해야겠다 싶어 식당을 차렸어요.” 그렇게 선택한 길이 어느새 동네의 터줏대감이 되었다.
남원바당의 음식은 조미료 없이 옛 방식을 고집한다. 대표 메뉴인 항정국은 돼지 삶은 국물에 배추와 소금만 넣은 단출한 국이다. “많은 분들이 닭 육수라고 생각하시는데, 원래는 돼지 육수예요. 도새기국이라고 불렸던 제주 방언 음식이죠.” 또 다른 메뉴인 콩국은 손님들에게 “우리 할머니가 해주던 맛”이라는 말을 듣는다.
식당 운영 방식도 철저하다. 김치부터 각재기까지 모두 직접 손질하고 가공한다. 노동은 두 배지만 “손님에게 더 좋은 음식을 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10년 넘게 이 원칙을 거른 적이 없다고 한다.
음식이 누군가에게 마지막 추억이 되기도 했다. 췌장암으로 식사를 못 하던 환자가 “콩국만은 넘어간다”며 맛있게 먹은 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가 생전에 남원바당 장태국을 마지막으로 먹고 일기장에 기록해둔 사연은 사장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음식이 그냥 음식이 아니구나 싶었죠. 손님과 함께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은 설날 이벤트에서도 드러난다. 5년째 단골 100명에게 신권 천 원을 세뱃돈처럼 나눠주며 “복돈”이라 부른다. “1년 내내 지갑에 넣어두시고 좋은 기운 받으세요”라는 말과 함께. 어떤 손님은 네 해 연속 받은 복돈을 모아두기도 하고, 복돈 덕분에 좋은 계약을 따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왔다.
손님의 대부분은 도민이지만, 관광객도 옛 음식을 맛보고 신기하다며 고마움을 전한다. “요즘 젊은 손님들이 와서 옛 음식을 먹고 좋아해줄 때 참 뿌듯해요. 그래서 더 주고 싶어져요.”
가게를 운영하며 가장 큰 보람은 세대를 이어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다. “10년 전 첫 손님이 지금도 오세요. 그분 자식도 함께 오고, 또 어떤 분은 90세, 100세 노모 드리려고 음식을 사 가세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사장은 담담히 말했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꾸준히, 한결같이 하고 싶어요. 적당히 손님이 오고, 내가 몸이 따라줄 때까지요. 그게 제일 좋아요.”
editor. 전은석, 고대성, 최진주, 하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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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아떡집 – 동문시장에서 찹쌀 오메기떡을 처음 만든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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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 떡은 굳는 게 정상이에요.”
이승열 어르신은 어린 시절 할머니 곁에서 떡과 고구마를 팔며 장사를 배웠다. 방앗간을 운영하며 제주의 유통 변화를 누구보다 일찍 체감했고, 지금의 ‘찹쌀 오메기떡’을 처음 만든 주인공이라고 한다.
“옛날엔 좁쌀 오메기였어요. 속이 비어 있고 팥고물만 묻혔죠. 내가 서른쯤 됐을 때 육지에서 찹쌀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걸 넣고 쑥도 넣고, 속에 팥앙금까지 넣었더니 손님들이 ‘오래간만에 오메기 나왔다’며 참 맛있다고 했어요.”
찹쌀 오메기는 금세 퍼졌다. 아남떡집을 시작으로 근방 떡집들이 따라 만들면서 더 유명해졌고, 외지인들이 육지로 보내면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혼자 했으면 덜 알려졌을 텐데, 여럿이 같이 하니까 더 많은 손님들이 알게 됐죠.”
요즘 시장에는 크림떡이나 과일떡 같은 새로운 떡이 등장했지만, 그는 여전히 옛 방식을 고수한다. “떡은 떡 맛대로 먹는 게 제일이에요. 유화제를 넣으면 오래 말랑하지만, 떡은 시간이 지나면 굳는 게 정상이에요. 나는 옛날식 그대로 할 겁니다.”
평생을 동문시장에서 살아온 그는, 언젠가 자식들에게 가게를 물려줄 때까지 이 방식 그대로 떡을 빚을 생각이다.
editor. 김남우, 김용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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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림당 – 수만 권 헌책을 품은 제주의 마지막 정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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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믿습니다.”
어릴 적부터 헌책을 모으던 습관은 역사 전공을 거치며 더욱 깊어졌다. 8년간 중국에서 모아온 책까지 더해지자, 집 안에만 두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사람과 빛을 만나는 공간이 필요해 열게 된 곳이 바로 헌책방 ‘동림당’이다.
동림당의 가장 큰 특징은 수만 권에 이르는 중국 서적과 역사·문학·철학 분야의 인문학 책들이다. 일반 서점에선 쉽게 보기 어려운 구성은 곧 이 공간의 고유한 색깔이 되었다. “헌책방은 세상에 남은 책이 거쳐 가는 마지막 정류장이에요. 우리가 받지 않으면 그냥 폐지가 되고 맙니다.”
운영은 쉽지 않았다. 유지비용은 늘 부담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책을 만나는 기쁨으로 버텨왔다. “장사꾼 기질이 부족해서인지 책을 파는 것보다 새로운 책을 만나는 순간이 더 설레요.” 특히 한 분야를 깊이 수집한 사람의 책장을 통째로 인수하는 일은 늘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에게 헌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없이 좋아할 존재예요. 세상이 변해 예전만큼 찾는 사람이 줄어도, 언젠가는 그 매력을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editor. 홍서진, 이정민, 양혜원, 이지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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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잡지클럽 – 합정과 제주에서 잡지로 시간을 짓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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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는 제가 원래 미쳐 있던 분야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걸 해보고 싶었죠.”
김민성 대표는 서울 합정과 제주 원도심에서 ‘종이잡지클럽’을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거의 없던 회원제 잡지 공간을 열며, 잡지를 읽는 경험 자체를 문화로 제안했다.
그의 하루는 두 매장을 오가며 큐레이션과 행사 운영, 협업 회의로 가득하다. “제주점은 비대면 소통이 많아 어려움이 있지만, 그래서 더 매니저에게 자율을 줘요. 잘하든 못하든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게 진짜 경험이니까요.”
서울과 제주에서 손님들의 반응도 다르다. 합정에서는 잡지를 읽으러 오는 이들이 많지만, 제주에서는 커피나 여행 중 들른 김에 잡지를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제주점은 잡지 소개문을 붙이는 등 접근성을 낮추는 시도를 하고 있다.
창업 전 그는 금융업계에서 일했다. “정답이 있는 세계에선 한계를 느꼈어요. 잡지는 정답이 없고, 모든 선택이 자율적인 세계라는 게 매력이었죠.”
제주 원도심을 선택한 이유도 닮아 있다. “잡지가 과거의 전성기를 지나 색을 찾아가듯, 원도심도 과거의 화려함을 지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그는 사업을 좋아하는 일이라기보다 해보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이라 말한다. “잡지 하면 종이잡지클럽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8년을 이어온 건 과도한 애착 대신 균형을 유지했기 때문이에요.”
제주 청년들에게는 이렇게 조언한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관계도 일도 연애도 자연스러움 속에서 깊어집니다. 조급함이 아니라 지금 맡은 일을 진심으로 해내는 게 가장 큰 경쟁력이에요.”
editor. 김소영, 김채연, 홍승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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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름 뉴스레터는 지역에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한 이야기를 천천히 전합니다. 여러분의 일상에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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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다른 인터뷰이, 또 다른 사름 에디터의 시선으로 담은 지금의 제주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매거진 사름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우 하고 로컬 인터뷰 소식 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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