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두 번째 이야기
: 이번 제주여행은 이렇게 다녀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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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ARM+
지난 이야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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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문을 닫은 전농로 로컬 카페 '만사오케이', 안경을 만드는 사람 김준규의 '스펙타클 리포트', 제주에서 태어난 문신기 작가의 예술 이야기, 이호마을 어부 고영길 삼춘의 이야기를 듣고 전했습니다.
지난 레터 아카이빙 ▶ sarm-letter.stibe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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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긴 추석 연휴에 제주로 오시겠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왕복 비행기표를 알아봤습니다. 연휴는 길었지만, 엄마의 조건은 까다로웠어요. 일요일엔 꼭 다니던 교회에 가야 한다는 것. 그 탓에 저렴한 항공편을 끊지 못하고, 결국 가장 비싼 티켓(게다가 비즈니스석)으로 간신히 예매했죠. 다행히 부모님이 일요일 아침 9시까지 대구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요.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그 시간이면 오전 11시까지 교회에 충분히 갈 수 있다며 안심시켰습니다. 아직도 좌석을 잘 못 찾는 부모님이 걱정돼, 항공사 안내서비스도 신청했어요. 그런데 어제, 엄마가 그러시는 거예요. “혹시 티켓 바꿀 수 없어?” 그 문자를 보는 순간, 화부터 났어요. 일주일 내내 항공편을 찾아 온라인 창을 들락거렸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엄마는 ‘9시 대구공항 도착’을 ‘9시 제주공항 출발’로 이해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11시까지 교회에 못 갈까 봐 혼자 속을 태우셨던 거죠. 도대체, 그놈의 교회가 뭐라고요? 엄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가 돼버린 교회가 그 순간만큼은 참 밉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같은 지역에서 제주로 이주해온 친구에게 했더니, “너희 엄마는 교회지? 우리 엄마는 일이야” 하더군요. 친구 엄마도 제주에 오시기로 했지만, 시니어 급식 업무 때문에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웠대요. 예전부터 늘 ‘일, 일, 일’이 엄마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고요.
그렇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건 우리 부모님에게만 있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사람에겐 정말 중요한 요소인데, 제3자가 보기엔 ‘하등 중요하지 않은 것’ 때문에 더 많은 걸 놓치고 사는구나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어쩌면, 그게 바로 우리 보통의 인생 아닐까요.
오랫동안 가까이서 서로를 보며 살아온 사이라 애틋하고 애잔하지만, 막상 사소한 한 가지로 충돌하면 화부터 나는 사이. 그게 또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닐까 싶어요. 저는 40대 중반이 되고 나서, 어떻게든 부모님과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고 있어요. 대구와 제주라는 거리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사나흘씩 하루 종일 붙어 다니는 제주 여행을 하곤 합니다. 이번 추석이 저희 가족의 세 번째 제주 여행이 될 것 같은데요. 티켓팅부터 티격태격인데, 여행은 또 얼마나 투닥거릴까요?
그런데 또 지나고 나면, 그 모든 시간이 다 소중해지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여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감성적으로 물들곤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시작될 두 번째 사름 이야기도, 제게는 그래요. 아직 쓰이지 않은 이야기지만, 더 좋고 깊은 말을 건네고 싶어 혼자서 끙끙대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럼 두 번째 사름+ 레터,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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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두 번째 이야기 순서
-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라이프스타일숍 '허상점'의 허진영
-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제주 김택화미술관 관장 이승연
- 우리 몬딱 소중해 ::
도두의 바다에서 40년을 일군 순옥 삼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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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로컬브랜드 : 사람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
– 라이프스타일숍 ‘허상점’의 허진영
“안경을 쓰던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냥 하나씩 꺼내 닦기 시작했죠.” 퇴사 후, 알고 지내던 안경원 사장님의 부탁으로 시작한 단순 아르바이트였다. 오가는 손님들의 문을 여닫아주고 진열장 속 수백 개의 안경을 꺼내 먼지를 닦다가 닦기 전에 하나씩 써보기로 했다. 낯선 일이었지만, 안경 하나하나의 결을 따라가다 보니 그 자체로 매력적인 세계가 열렸다.
얼굴의 구조와 시력범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프레임을 제안하는 아이웨어 컨설턴트의 일은, 렌즈를 넘어 사람의 시선과 태도까지 들여다보는 일로 바뀌었다. 그는 결국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제주로 이주했고, 안경광학과에 입학해 학업과 일, 육아를 함께 감행하며 일상의 구조를 새롭게 짰다.
가게 이름은 그의 성 ‘허’와 ‘헤아릴 상(商)’을 조합해 만든 것이다. “허가 헤아려 준비한 상점, 괜찮지 않나요?” ‘허상점’은 단순한 안경 판매 공간이 아니라, 얼굴을 들여다보고 취향을 헤아리는 감각의 작업실이 되었다.
제주살이는 또 다른 계기를 불러왔다. 우연히 마주한 곳에서 옷을 만드는 장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 만든 옷은, 나를 위한 옷이었어요. 제주에서, 육아와 상점을 병행하는 지금의 나 에게 어울리는 옷."
그의 고향은 통영이다. 누비로 만든 침구와 옷은 어린 시절 그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처음 맞은 겨울, 서울에서 입던 롱코트와 패딩은 생활에 어울리지 않았고, 그는 문득 누비를 떠올렸다. 오롯이 한명의 손끝에서 한 벌 한 벌 완성된 옷은, 빠르게 유통되는 옷들과는 전혀 다른 감촉을 지녔다. 모든 과정이 제주에서 이루어졌고, 그 옷엔 입는 사람의 생활 방식과 계절, 감각이 함께 담겼다.
최근 겨울 그 옷들을 손님의 추천으로 한 갤러리에서 전시하게 되었고, 큐레이터는 말했다. “이건 옷이라기보다 작업이에요.” 그는 잠시 멈칫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입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되짚어보며, 자신이 짓는 옷이 결국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애월에서의 첫 공간을 떠나 일년남짓 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유랑생활을 마치고 4월중순 탑동의 디앤디파트먼트에 정착했다. 사진 작업을 이어가는 남편 과의 공동 운영체제로 제주에서는 보기드문 국내외 사진 작가들의 책이 큐레이션된 서점까지, 더 깊어진 허상점을 만날 수 있다.
@heosangj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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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전히 묻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바로 답할 수 없지만, 그동안 그가 걸어온 인생길 안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허”에게 물었다. 제주를 여행한다면, 어디를 걸어보면 좋을까.
탑동에서 하루쯤 걸어보세요. 관덕정까지 이어지는 골목에 제주의 결이 숨어있어요.
ⓒ사진. 허진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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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마을과 미술관 사이, 예술의 시간을 짓는 사람
- 제주 김택화미술관 관장 이승연
“그림을 통해 사람을 알게 됐어요.” 김택화 화백의 며느리로서, 이승연은 그림과 먼저 인연을 맺었다. 서울에서 일하며 제주나 제주의 화가에 관심 없던 시절을 지나, 가족이 된 이후 자연스럽게 그림 곁에 머물게 됐다.
전시와 교육, 콘텐츠 기획을 맡으며 그는 점차 이 작가를 ‘기억하고 전하고 싶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김택화 화백은 제주 출신으로 현대미술을 전공한 1세대 작가다. 그의 풍경화에는 단지 풍경만이 아닌, 살아낸 시간과 사랑한 장소, 고유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택화 화백은 “가장 제주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제주가 최고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낸 땅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그는 제주의 정서를 풍경에 담아낸 기록자였다.
미술관이 자리한 신흥리 역시 김택화의 그림에 등장하던 마을이다. 실제 작품 속 풍경과 닮은 공간을 발견하고 이곳에 미술관을 짓게 되었고, 이는 그림과 장소가 겹치는 상징적인 출발이었다. 공예와 디자인을 전공한 이승연은 이전에도 디자인 회사와 패션업계를 거쳤다. 전시, 교육, 굿즈. 이 세 축이 미술관 운영에 있어 핵심이라고 말한다. 굿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전시”라 생각했고, 그 철학은 김택화 그림을 활용한 팝업북, 티셔츠 등으로 이어졌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미술관은 지역과 더 가까워졌다. 조천읍 도서관, 문화센터 등에서 ‘찾아가는 전시’를 이어갔고, 주민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이를 다시 전시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한 마을 워크숍도 기억에 남는다. “어릴 적 내가 다닌 학교와 마을이 미술관 전시가 되었었다”는 기억을 남겨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는 말한다.
현재는 문화예술경영 박사과정을 밟으며 실무와 이론을 넘나들고 있다. 앞으로 김택화미술관이 단지 전시장이 아닌, 지역과 예술이 만나는 유연한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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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 관장의 이야기는 제주의 마을만들기종합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퐁낭그늘 5호'에, 김택화 화백의 아들이자 함께 미술관을 운영하는 김도마 작가의 이야기는 매거진 사름 Vol.10에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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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몬딱 소중해 : 숨을 참는 시간, 살아 있다는 감각
- 도두의 바다에서 40년을 일군 순옥 삼춘의 이야기
“열한 살 때부터였지. 할머니 손 잡고 바다로 나갔어. 그땐 물질이 아니라, 그냥 삶이었거든.”
도두마을 해녀 탈의장. 바닷물기를 아직도 머금은 채 나타난 순옥 삼춘은 올해 일흔둘. 식당을 열고, 바다에 들고, 하루가 두 번 시작되는 삶을 40년째 살아오고 있다. 강원도, 여수까지 육지로 물질을 다니며 버틴 청춘. 손에 잡히는 건 고단한 숨뿐이었지만, 그 숨이 곧 생계였고, 선택지는 그것뿐이었다.
“겨우 밥 한 끼 벌려고 다닌 거지.” 그렇게 시작된 물질. 한때는 성게, 소라, 미역이 넘쳐났고, 해녀의 손끝엔 계절이 깃들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바다는 더 이상 풍요롭지 않지만, 삼춘은 여전히 바다로 향한다. 남편은 말렸고, 병든 몸은 쉬라 했지만 삼춘은 말한다. “숨이 막혀, 바다 안 가면.” 그래서 새벽 4시, 반찬 준비를 마친 손으로 물질복을 챙긴다. 그게 자기 삶의 리듬이니까. 그렇게 차려지는 밥상이 있다. 바로 도두에서 ‘순옥이네 명가’라 불리는 식당이다. 20년 넘게 바닷일과 식당 일을 함께해온 삼춘은 지금도 자기가 건져 올린 해산물로 손님을 맞는다. 진짜 바다의 맛, 그 시간과 정성이 담긴 밥상을 차려내는 사람. 해녀였고, 아내였고, 엄마였고, 식당 주인이었던 한 사람이자 여전히 바다에 몸을 맡기는 사람.
“물속은 고요해. 생각이 안 들어. 숨을 딱 참고 들어가면, 딱 그 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야.” 얼마 전 도두마을에선 은퇴한 해녀 여덟 분을 위한 작은 은퇴식이 열렸다. 삼춘은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이 났다고 했다. 언젠가 자신에게도 그런 날이 오겠지, 하고. 아직은 아니다. 아직은 바다에 들어가야 마음이 놓인다. 도두 앞바다. 누군가에겐 스쳐가는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겐 한 생이 거기 있다. 순옥 삼춘은 그 바다를 살아냈고, 지금도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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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름+ 편지에서 추천하는 제주의 장소들.
(레터내용과 관련있음)
📍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 제주 by 아라리오
제주의 오래된 공간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한 라이프스타일 복합 공간. 지역의 작가와 브랜드, 큐레이션 숍과 식음 공간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너무 유명하지만 소개하는 이유는, 앞서 소개한 허상점의 옷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 그 특유의 손맛과 섬세한 취향이, 디앤디 제주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관람 후엔 탑동에서 관덕정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걸어보자. 제주의 오래된 결이, 발걸음 사이사이 스며든다.
📍 김택화미술관 (제주 조천읍 신흥리)
바다와 마을 사이, 한 화가의 시선이 머물던 자리에 세워진 미술관. 제주의 정서를 풍경에 담아낸 김택화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림 속 제주의 골목과 바람, 사라진 시간들을 조용히 마주하게 된다. 관람 후엔 신흥리 골목을 따라, 김택화가 사랑한 풍경을 직접 걸어보기를.
🧢 editor's pick. 김택화 화백의 작품을 감상 후에는 굿즈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라산이 새겨져 있는 볼캡(cap) 모자의 색감과 디자인은 정말 예쁘다!!
📍 순옥이네 명가 (제주시 도두항 인근)
도두 바다를 삶터 삼아 살아온 해녀 순옥 삼춘이 운영하는 해산물 전문 식당. 전복, 성게, 오분자기—직접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재료로 차린 밥상이 이곳의 일상이다. 제주 바다의 깊은 맛을 그대로 담은 전복뚝배기와 물회가 대표 메뉴. 식사 후엔 도두봉을 천천히 걸어보자. 바다와 함께 살아온 시간들이 바람처럼 밀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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