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 첫 번째 이야기
: 제주의 여름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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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SARM+
장마 전, 제주 골목 어귀를 걷다 보면 은은한 향기 따라 피어난 치자꽃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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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 노랑에서 우윳빛으로 번져가는 그 꽃은 제주 옛사람들에게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달력’이기도 했지요. 기상청도, 뉴스도 없던 시절. 사람들은 바람의 결, 나뭇잎의 뒤집힘, 그리고 이 꽃의 향기를 따라 다가올 계절을 예측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의 삶은 불편했지만, 자연의 미묘한 움직임을 포착하는 감각은 어쩌면 지금보다 더 정밀했을지 모릅니다.
오늘부터 시작할 사름+ 뉴스레터를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시작은 낯설고 길을 헤맬지라도, 언젠가 원하는 곳에 닿게 해줄 지렛대가 되리라 믿으며 첫 번째 이야기를 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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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am에 참여하는 필진 중에 박진희 작가님이 있는데요. 그는 최근 제주 CBS 라디오의 한 코너를 진행하고 있어요. 헌데 그 코너가 ‘주제를 정하고 질문을 던져서 청취자의 답변을 요구’하는, 조금은 부담되는 구성이에요. 기나긴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박 작가는 새로운 일의 신호라 생각하고 흔쾌히 이 일을 수락했는데요. 문제는 매주 ‘새 질문’을, 게다가 대중이 흥미로워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창작(?)뿐 아니라, 생방 중에 사연이 많이 오지 않을 것을 대비해서 미리 답변을 수집하는 노력까지 깃들여야 한다는 건데요.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일을 시작한 후로 협업 파트너이자 친구인 저에게 매주 월요일 카톡으로 ‘질문’만 전송한다는 거죠. 안부 인사 일절 없이. 그만큼 가까운 사이기는 하죠.
한주를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어려운 질문까지 답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그가 보낸 질문에 답하면서 어김없이 새로운 생각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준비한 사름+ 레터에도 제주의 다양한 사람들 이야기와 제주 소식뿐 아니라 그것을 관통하는, 혹은 우리가 삶에서 고민해봐야 할 질문을 담으려고 해요.
첫 번째 사름+ 레터의 질문이 궁금하세요?
그럼 우선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함께 읽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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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름+ 첫 번째 이야기 순서
- 우리동네 로컬 브랜드 ::
만사오케이, 당신과 함께여서 만사가 오케이였습니다.
- 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스펙타클 리포트, 안경을 만드는 김준규의 두 번째 시즌
- 바람 따라 예술 ::
나는 섬에서 태어난 촌놈이고, 오늘도 거기서 그리고 있습니다
- 우리 몬딱 소중해 ::
열 셋에 바다를 만난 어부 고영길 삼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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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로컬브랜드 : 만사오케이, 당신과 함께여서 만사가 오케이였습니다.
약 8년 동안 ‘만사오케이’를 지켜온 바리스타 송태양. 카페를 닫는다는 그의 소식을 듣고, 전농로 골목에 자리한 가게를 다시 찾았다.전농로 골목에 자리한 작은 카페, 만사오케이. 이 길목은 벚꽃이 흩날리는 봄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송태양 씨는 초록 잎 사이로 쏟아지는 빛이 좋아 이 공간을 선택했다고 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이 순간에도 벚꽃을 보러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집주인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오거나 그런건 아니고요.”
흔한 걱정을 눈치챘는지, 그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예전부터 배워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어요. 나이 많은 신입이지만 궂은 일이라도 좋으니 배우면서 할 수만 있다면 제과제빵이라던지 디자인 일을 배워보고 싶어요.”
지금이 아니면,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영영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 제가 기억하기로는 부산에서 바리스타를 하다가 정말 가벼운 짐으로 만사오케이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처음 시작할 때도, 지금 멈추기로 한 지금도, 모두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가게 안엔 손님들이 건넨 소품과 엽서가 가득했다. 외국에서 보낸 편지도, 직접 그려온 외관 스케치도, 작은 장식들도 있었는데 그는 그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누가 줬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도. 그 외에도 손님들과의 에피소드, 그가 기획해서 운영했던 커핑모임, 엔조이 커피 매치와 같은 활동과 손님으로 찾았던 나와의 작은 기억들까지……. 이야기를 갈무리하며 알게 됐다. 그는, 작은 순간을 잊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 마지막으로 만사오케이를 사랑해 준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실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 마지막 한 줄이 가장 하고싶은 말인데요. 구구절절 길게 썼던 글을 줄이고 또 줄여서 가장 하고싶은 말을 적었어요. 저에게 8년의 시간은 당신과 함께여서 만사가 오케이였습니다. 여러분의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만사가 오케이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늘 말하듯 머리가 희끗해져서 커피를 내리는 자신의 모습을 행복하게 그리던 만사오케이 송태양. 그에게도 전했지만, 첫 번째 영업종료를 축하한다. 그리고 그의 일들을 응원한다. 언젠가 다시 만사오케이의 불이 켜지는 날을 기다려본다.
editor. 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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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양 씨는 8년의 커피 일을 마무리하며, 오래 미뤄둔 일들을 다시 바라봤습니다.
당신은 어떤 ‘다음’을 미뤄두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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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이렇게 일합니다
: 스펙타클 리포트, 안경을 만드는 김준규의 두 번째 시즌
“처음 만든 안경은 진짜 엉망이었어요. 그래도 썼어요. 내가 만들었으니까.”
제주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했다는 김준규 씨, 전혀 해본 적 없는 일을 기술도 스승도 없이 새롭게 시작했다. 제주란 땅은 그런 힘이 있는 걸까? 아니면 준규 씨에게 도전할 용기가 있었던 걸까? 그의 본업은 장사였지만, 재능이 영 없었다고 한다.
“식당 장사를 20년 가까이 했고, 업종 변경만 일곱 번쯤 했죠. 장사가 안 되면 또 딴 거, 또 안 되면 또 다른 거. 그렇게 살다가, 쉼표처럼 제주에 내려왔어요. 그냥 좀 쉬자 싶었는데, 이상하게 손이 근질근질했어요. ‘내 안경, 내가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게 시작이었어요. 가르쳐주는 데는 없었고, 박람회 가서 기계 사서, 그 자리에서 물어가며 배웠죠.”
두세 시간 설명 들은 게 전부였고, 나머지는 손으로 익혀야 했다. 그는 매일 깎고 갈고 다듬고, 모양 바꾸고 다시 깎았다. 기계의 도움은 받지만, 결국 손이 기억해야 하는 일이다..
“브랜드명은 스펙타클 리포트(Spectacle Report)라고 정했어요. 스펙타클은 안경을 뜻하기도 해고요. ‘리포트’에는 과제처럼 진지하게 사람에게 어울리는 안경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말하자면 ‘안경 숙제’ 같은 거죠.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걸 진지하게 찾아보고 싶어서요. 이걸 브랜드로 키울지, 전시로 남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어요. 지금 이 안경은, 제가 다시 사는 방식이에요.”
로컬브랜드의 시작은 종종 한 사람의 작은 도전에서 비롯된다.. 제주의 한적한 작업실에서 오늘도 홀로 매일 깎고 갈고 다듬고 있을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안경이 그렇듯!
editor in chief. 곽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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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인생의 두 번째 시즌, 어떤 일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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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예술 : 섬에서 태어난 촌놈이고, 오늘도 거기서 그리고 있습니다.
“예술가요? 저는 예술가 아닙니다. 작업 2, 생계 8이에요.” 문신기 작가는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한다. 회화를 전공했고, 그림은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지만, 하루 대부분은 디자인 클라이언트 일로 채워진다. 회화는 아무도 안 봐도 계속하게 되는 일, 그에겐 공기 같은 존재다.
그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제주가 섬이라는 자각은 떠난 뒤에야 생겼다고 한다. 오키나와나 쿠바 같은 섬들을 여행하며 자연과 공동체, 여성의 활동성 같은 공통점을 발견했고, 억압과 욕망이 겹쳐 있는 섬의 이중적인 태도 속에서 제주의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호주 오지의 애버리진 공동체에서, 태국 국경 난민캠프에서 그는 미술을 도구 삼아 사람들과 시간을 나눴다. “작업보다 삶의 태도에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그때 느꼈던 따뜻함이 제일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사람은 결국 사람에게서 행복을 얻는 존재라는 걸, 그는 그곳에서 배웠다.
최근 외국에서 전시를 하면서는 또 다른 감각이 찾아왔다고 한다. “베를린에 갔을 땐, 내가 마치 멀리 떨어진 섬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그래도 그게 제 작업이고, 제 메시지니까요.” 그는 자신을 ‘섬 촌놈’이라 부른다. 머리보다 행동이 먼저 나가는 성격, 모 아니면 도인 성향. 실패도 자주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다고 말한다.
“아티스트가 자격증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저는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요.” 요즘은 밤 11시 전에 자는 걸 목표로 삼는다. 아이유 대사를 인용하며 웃는다. “어떻게 지치지 않았는데 잠이 오지?”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고.
작업에 끝은 없다고 말하는 그는, 다만 얇고 가늘게라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따뜻하지 않아서였어요. 합리니 논리니 했지만, 그냥 덜 아프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요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따뜻해지고, 최선을 다합시다.”
ⓒ문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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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에게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의 아티스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nasa_pa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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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몬딱 소중해
: 열 셋에 바다를 만난 어부, 고영길 삼춘
“나 어릴 때 13살에 고기 낚으러 댕겼어. 제사 지낼 때 바닷고기가 없다고 어머니가 하소연하니까, ‘내가 직접 낚아야겠다’ 싶어서 시작했주게.”
그렇게 고영길 삼춘의 바다 인생이 시작됐다. 고작 열세 살, 수심 얕은 데서 낚싯줄을 던졌다. 낚는 법도 몰랐던 소년은 어른에게 술 한 잔 대접하며 기술을 배워나갔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지만, 그에게 바다가 삶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사랑도 시작되었다.
“그물 못 매던 초보 해녀가 있었지. 내가 매줬어. 그때부터 우리 인연이 시작됐어.”
삼춘은 그 일을 계기로 아내와 가까워졌고, 전화도 없던 시절 돌담에 쪽지 꽂고, 날짜 정해 읍내서 영화도 보고, 어둑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돈이 없던 시절, 결혼식은 소박했다. 양가 집에서 챙겨온 음식으로 진행된 그들을 위한 잔치. 그리고 시작된 긴긴 노동의 시간. 아내는 해녀로, 그는 어부로 같이 일하고 같이 살아냈다.
70여년의 시간을 힘겹게 일한 두 사람에게도 쉼의 시간이 찾아오는가 싶은 즈음. 이제는 함께 댄스 교실도 다니고, 마을버스 타고 놀러도 다니던 아내가 몸져누운 지 1년 반. 삼춘은 하루도 빠짐없이 곁을 지킨다. “이 사람, 나랑 같이 고생했는데, 딴 데 못 보냅니다.”
그런 삼춘에게 가장 행복한 때를 물었더니, "함께 춤 배우러 다니던 그때. 그게 최고였지. 너무 짧았어, 그 시간이"라고 한다.
editor in chief. 곽효정
editor. 고명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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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질문.
당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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